"<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단편집>은 양국 만화가 6인이 각 세대별로, '한국'을 주제로 삼아 제작하는 만화집이다. 프랑스 카스텔만사의 제안으로 오렌지 에이전시가 기획, 한국 길찾기와 공동으로 제작한다. 카스텔만사는 이전에 '일본'을 주제로 일본작가와 함께 이미 <일본>이라는 제목의 작품집을 낸 적이 있다.
기념집에 관한 논의는 올 초 앙굴렘 국제만화 축제 때 오갔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60대에서는 이두호, 50대 이희재, 40대 박흥용, 30대 최규석, 20대 변기현, 그리고 여성만화가 중에서는 채민이 참여한다. 프랑스에선 여성작가 2인을 포함한 여섯 사람으로 구성, 10월쯤 양국에서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주제가 방대하다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프랑스 만화가들 중에서는 이고르라는 사람이 한국의 남북문제를 그릴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를 위해 프랑스 만화가들이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지난 5월 SICAF 기간에 한국을 다녀갔다."
"서로의 문화 소개와 소통, 교류에 의미 둬야"
- 물론 일본에서 이미 시도된 기념집이긴 하지만 국내 만화에 대한 유럽의 관심과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월드컵이 그렇듯, 비나 보아가 음악에서 그렇듯 만화에서도 하나둘 어떤 특정 콘텐츠가 잘 나가고 큰 화제를 불러올 수 있고, 어느 때엔 정말로 경제적으로도 대박이 날 수도 있겠지만, 물적 계량으로 접근하는 것은 오버다. 침착하고 조신하게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그 과정을 통해 소통하고, 교류하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희재가 그릴 '한국'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다음달 20일까지가 마감이라 (다른 작가들도) 아마 한창 고민 중일 거다.(웃음) 내 경우엔 고향을 지키셨던 우리 종가의 어른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묵묵히 땅을 지키며 생을 살아온 노인의 이야기다. 내 고향은 완도인데, 실은 이곳은 구한말 제일 먼저 서양인의 발이 닿았던 곳이기도 하다."
-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등 세계 만화계가 교류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만화의 해외 진출 움직임도 활발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내 경우에는 2003, 2005, 2006년에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에 참가했었다. 지금껏 크고 작은 대회에 참가하며, 국내외 만화 관계자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그들의 인식이 점차로 변하고 있다는 거다. 흔히 '망가'로 알려져 있던 동양의 만화에 대해 한국의 '만화'가 조금씩 소개되던 양상에서 그들의 관심 또한 한국만화의 심부로 점점 들어오고 있는 과정이라 본다. 그간 이문열, 박완서, 황석영 등 우리 문학이 세계에 알려지는 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만화는 무척 빠른 속도로 소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렇다할 '히트작'은 없지만 차츰 나아가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 만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외부적 요건 또한 성숙돼 가고 있다. 해를 거듭하며 성과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등이 참여해 10월에 문을 여는 '창작만화 웹사이트'사업을 비롯해 만화계에서도 우리 만화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듯하다.
"만화는 1차적으로 '잡지'라는 중간검증단계를 거치는데 잡지의 퇴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질적으로 현재 우리 만화시장은 일본만화 총판장이 돼버렸다. 전체 만화산업의 교량역할을 하는 잡지를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한공간인 온라인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것이 창작만화 웹사이트다.
소년, 소녀, 유아, 어린이, 어른 등 다양한 잡지를 섹션으로 구분하고, 창작 콘텐츠를 실을 수 있는 창작 생산 기지이자 유통거점인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다. 이 사이트를 통해 창작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실린 작품들은 다시 오프라인으로 출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이 사이트는 자립할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자립을 위해 국가가 만화창작진흥기금 조성을 통해 만화산업을 돌봐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이트의 기초가 탄탄해지고 나아가 문화로서 만화의 융성은 물론 산업의 생산기지 역할로서도 제 몫을 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최근 5년간을 제외하면 우리 작가들이 단 몇 년이라도 순수한 의미의 만화만을 위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있었던가. 각종 만화 관련 학과, 교육기관 등을 통해 인적 인프라는 한층 풍부해진 상태이고, 모두에게 비교적 균등한 기회도 주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인적 인프라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선·후배, 모두 만화에 몰두해야 좋은 작품 나올 것"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딱히 말할 게 없을 정도로 다들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같은 세대들이 더 문제인 듯하다. 만화를 일평생 하기로 했으면, 그 늪에 계속 빠져 지내야 하는데 이런저런 현실로 작품활동을 소홀히 한다.
만화가는 가난해도 만화가, 죽어도 만화가가 아니겠는가. 후배나 선배나 동료들이 다같이 만화에 몰두해야 만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몸이 만화라는 호수에 흠뻑 빠져야 일정한 산물을 얻어내고, 그 흠뻑 빠진 만큼 대중들도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당분간은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잡지에 어린이 만화 <아이코 악동이>를 계속해야 한다. 얼마 전에 프랑스 카스텔만사와 계약을 마친 두 작품이 프랑스에서 출간된다. <간판스타>는 올해 안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분명 감사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내 만화, 혹은 우리 만화가 수출 됐다고 해서 과장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우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자연스런 세상의 흐름이 그렇듯 우리 동네와 온 나라, 유럽과의 세계공간이 좁아진 것일 뿐이고, 만화에 대한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진 까닭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