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광철씨는 특색있는 명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지만 살아가면서 있을 어려움도 이겨보겠다는 숨은 뜻도 있다고 설명한다.
김광철씨는 특색있는 명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지만 살아가면서 있을 어려움도 이겨보겠다는 숨은 뜻도 있다고 설명한다. ⓒ 서정일
기자는 9일 아침, 어렵게 인터뷰 허락을 받아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만남에서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밝고 건강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만나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꽤 세련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얘기가 길어질수록 그리고 북에 대한 얘기가 나올수록 어두운 표정으로 북한의 현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한이 좀 더 북한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하고 같은 동포라 생각하고 북한주민들을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특히,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많은 탈북자들은 남한으로 오는 것을 소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다면서 그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도 충분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넘어와 남도끝자락 순천에서 모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탈북자 김광철씨, 어렵게 그가 살아 온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한국으로 넘어와 남도끝자락 순천에서 모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탈북자 김광철씨, 어렵게 그가 살아 온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 서정일

얘깃거리를 돌려 남한에 와서의 일들은 어땠냐고 묻자 그는 제일 먼저 언어 교정부터 했다고 말한다. 1년 정도 맘먹고 언어를 고치려 했다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진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인데 긴 세월동안 많이 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슬픔이었다.

그는 처음에 '기술이 있어야 살겠구나' 하고 생각해서 컴퓨터를 배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력서를 70~80군데 냈음에도 겨우 2~3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그곳마저도 면접에서 떨어져 크게 실망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후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는 영업을 해보고자 마음 먹고 지금 하는 자동차영업사원으로 들어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려움은 많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말에 국경이라는 큰 산을 넘은 그가 현실의 이런 작은 산을 넘지 못할 리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대뜸 은행 얘기를 꺼내며 북한에서는 저금을 한다면 그건 모두 국가 소유가 되기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정착금으로 오백만원이 나와 그것을 저금했는데 행여 국가가 가져갈까봐 날마다 십만원씩 통장에서 인출했다가 다시 넣고를 두 달 동안 반복한 후에 안심하고 잠을 잤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가 순천에 정착하면서 단골이 됐다는 헤어샵모디컬 염상준 원장은 처음 북한 사람을 접촉한다는 게 신기했고 어릴 적 교육받을 땐 북한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로만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친근함이 느껴져 이제는 형 동생으로 지낸다고 말했다.

중간 중간 커피잔을 기울이기에 커피는 자주 마시냐고 물으니 ‘처음엔 이곳 사람들은 커피를 왜 그리 많이 마실까’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훨씬 더 많이 마신다고 겸연쩍어했다. 그만큼 이미 우리 이웃이 되어버린 김광철씨. 하지만 머리를 자르고 나면 또다시 힘겹게 서류가방을 들고 돈을 벌기 위해 시내를 배회할 그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덧붙이는 글 | SBS U News에도 송부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