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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에 그려진 '도서관 사서'와 '책벌레' 그림이 깜찍하다.
상장에 그려진 '도서관 사서'와 '책벌레' 그림이 깜찍하다. ⓒ 한나영
명색이 상장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지질이 두툼하거나 고급스럽지도 않다. 그냥 우리가 쓰는 A4 크기의 얇은 종이다. 상을 받았다고 하니 기분은 좋긴 한데 학교에서 시상한 내역을 들어보니 우습기 짝이 없다.

“엄마, 그런데 상 종류가 희한해. 별별 상이 다 있어?”
“뭐가 있는데?”

“늘 같은 친구하고만 어울려 다닌다고 해서 ‘트윈상’. 지각을 제일 많이 했다고 해서 ‘지각대장상’.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큰목소리상’도 있고, 반대로 목소리가 제일 작은 애도 상을 받았어. ‘제일 크게 웃는 상’도 있고…. ”
“별 놈의 상이 다 있구나.”

“그것 뿐이 아니야. 선생님의 지시를 항상 복창하는 애가 있는데 그 애도 ‘선생님 따라하기’ 상을 받았고, 자기 사물함을 못 열어서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도움을 요청한 아이도 상을 받았어. 또 선생님이 말하면 자주 반항하는 아이, 글씨를 못 알아보게 쓰는 아이도 상을 받았고.”

딸의 말을 들어보니 상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희한한 상이 많이 있었다.

“엄마, 드레스코드(dress code)를 제일 많이 어긴 아이도 상을 받았어.”

교복을 입지 않는 이곳 미국에서도 복장에 대한 규제는 엄격히 있다. 바로 드레스코드가 그것인데 거기에는 학생들이 입어서는 안 될 옷에 대한 규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예를 들면, 배꼽티나 어깨, 또는 등이 그대로 노출된 탱크탑(tank-top)이나 홀터탑(halter-top)은 안 된다. 반바지나 스커트도 너무 짧으면 안 되고, 속옷이 비치는 옷도 안 된다. 그리고 속옷이 드러나게 무릎 위가 찢어져 있어도 안 되고.

이런 식의 꼼꼼한 드레스코드가 학칙에 있는데 모두가 다 잘 지키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 드레스코드를 가장 많이 어긴 학생이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환호했던 상도 있는데 그건 바로 팀리퍼럴(team referral)을 가장 많이 받은 학생이 받았던 상이라고 한다. 팀리퍼럴은 말하자면 축구에서 반칙을 했을 때 받는 옐로우 카드와 비슷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선생님에게 반항하거나 수업시간에 자주 떠드는 경우, 지각을 하거나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입지 않는 경우에도 팀리퍼럴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 주, 작은 딸 학교에서는 이번 연도(2005-2006)의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학부모들도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앞에서 진행중인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떠드는 학생이 있었다. 학생들이 수강한 과목의 교사들도 모두 참석했는데 한 교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떠드는 학생에게 다가와 명령을 내렸다.

“네 자리에서 일어나 저기 구석진 곳으로 가.”

"저기 구석진 곳으로 가."
"저기 구석진 곳으로 가." ⓒ 한나영

학부모들도 참석한 자리였는데 선생님은 학생에게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그 학생은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때까지 외진 곳에 혼자 앉아 있어야 했다. 이렇게 떠드는 경우에도 팀리퍼럴을 받는다고 한다.

미국 교육이 겉보기에는 퍽 자유로운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엄격한 면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이번 피크닉에서 깜짝쇼로 진행된 시상식은 ‘캐릭터 어워드(Character Award)’인 만큼 나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상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기분이 나빴을 상도 있었는데 딸의 말을 들어보면 상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더구나 '희한한' 이름의 상 내역이 발표될 때마다 학생들은 누가 수상자가 될 것인지를 예측하면서 예상 수상자의 이름을 거명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튀는 상' 수상자인 크리스티나.
'튀는 상' 수상자인 크리스티나. ⓒ 한나영
딸과 가장 친한 크리스티나는 ‘튀는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상이 무슨 상이냐고 물으니 다른 아이들보다 튀는 모습으로 다니기 때문에 받은 상이라고 한다. 하긴 내가 본 크리스티나는 정말 튀는 아이였다.

독일에서 온 크리스티나는 늘 까만 옷을 즐겨 입는다. 눈에도 검정 아이섀도를 바르고 매니큐어도 검정색이다. 팔찌도 요란한 금속 팔찌를 하고 다니고 반지도 한 개만 끼고 다니는 게 아니다.

처음 크리스티나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불량소녀’로 분류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그렇게 진단을 했다.

하긴 한국에서라면 그런 복장이라면 충분히 ‘불량’으로 낙인(?) 찍힐 만 했다. 그런데 크리스티나에 대한 내 진단은 두 딸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엄마,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그렇게 판단하지 마. 그건 자신만의 개성이니까. 엄마의 틀에 벗어난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 외적인 것으로 섣부르게 판단하는 엄마, 싫어!”

아이들 말대로 개성은 말 그대로 개개인이 가진 특성일 터인데 나는 왜 고정관념을 가지고, 틀린 모범답안을 가지고 점수를 매기려 했던 것일까.

이제는 고리타분한 구세대라고 해도 저항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 작은딸의 학교에서 있었던 '캐릭터 어워드'는 학생의 개성을 살리고 격려하는 상이었다. 아울러 고쳐야 할 점도 깜찍하게(?) 알려줘 스스로 깨달아 고치도록 자극을 준 시상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잘 해서 받는 상이라야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주는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 그런 타성에 젖은 나에게 이곳 중학교의 희한한 시상식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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