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기자]
"실수를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실수해줘서 한기총이 사학법 재개정 운동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었습니다."
서경석 목사가 6월 12일 한기총 회의실에서 열린 '사학법 재개정 촉구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한 김성기 과장(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장)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다. 이 한마디에 한기총이 꺼져가던 사학법 재개정 운동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담겨 있다.
한기총은 6월 12일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사학법에 불복종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운동을 전개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학법의 재개정을 촉구하는 150만 명의 서명 용지를 헌법재판소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대형교회 도움 아니었으면 100만 명도 힘들어
사실 그동안 한기총이 해온 사학법 재개정 운동은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재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당초 1000만 명을 목표로 했으나, 5개월이 지난 현재 150만 명이 서명을 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지 2개월 만인 지난 2월 28일 100만 명을 돌파했으나, 이후 3개월이 넘도록 50만 명에 그친 것이다.
그나마도 여의도순복음교회·사랑의교회·명성교회 등 대형교회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100만 명을 넘기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사학법 재개정에 가장 적극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장 안영로 목사)의 경우 서명을 한 교인은 10만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안영로 총회장 등의 임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각 교회가 적극적으로 서명운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으나, 쉽게 되지 않았다.
한기총은 조만간 2차 서명운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2차 서명운동은 교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한기총은 밝혔다. 그러나 교회에서조차 호응을 얻지 못한 사학법 재개정 촉구 서명운동이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한기총이 믿었던 한나라당마저 사학법 재개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기총이 개정 사학법 운동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었던 것은 서 목사의 얘기처럼 서울시교육청의 실수(?)가 큰 역할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각 학교로 종교교육과 관련한 지침이 담겨 있는 공문을 보냈다.
그 공문에는 ▲종교 과목 개설 시 종교 이외의 과목을 포함해 복수로 편성하고 ▲학교나 학년 단위로 한 곳에 모여 특정 종교 의식의 실시를 금지하고 ▲특정 종교의 의식 활동을 교과 내용에 포함한 지도를 금지하고 ▲종교로 인한 차별을 금지한다(학생회 임원 출마 자격 제한) 등의 내용 등 모두 아홉 가지의 지침이 담겨 있다. 교육청은 이와 함께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최고 특별감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시 교육청이 도와준 꼴... 교육청, "그게 아닌데"
이 공문이 공개되자 한기총과 기독교 사학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종교교육 지침이 기독교 사학을 말살하려는 행위라고 했다. 한국교회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자, 서울시교육청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들은 6월 5일 오후 한기총과 기독교사회책임 등에 전화를 해 "이번 공문은 실무자의 착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며 "본의 아니게 한국교회에 염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당시 공문이 종교교육의 기준이나 원칙을 밝힌 것처럼 비춰졌다"며 "기독교계의 반발로 이마저도 전부 백지화했다"고 해명했다.
이 뿐만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의 김성기 교육과정정책과장은 지난 6월 7일 한기총을 직접 방문, 해명과 함께 사과를 했으나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각 학교로 다시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은 ▲종교 과목 개설 시 종교 이외의 과목을 포함, 복수 과목을 편성하여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정규 교육 과정의 종교 활동 시 학생의 선택과 자율적 참여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A'라는 기독교 사학에서 종교 과목을 개설할 경우 '철학' '논리학' '심리학' '생활경제' '교육학' '생태와환경' 등의 과목을 동시에 개설하고 학생이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다. 예배의 경우도 마찬가지. 대광고 강의석 군 사태처럼 학생에게 예배 참석의 자유를 주라는 것이다.
"종교교육과 사학법 개정은 별개"
그런데 이 내용은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 종교교육과 관련한 교육부의 가장 기본적인 방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기총처럼 이 문제를 사학법과 연관시키는 것은 '오버'다. 기독 교사들의 모임인 '좋은교사'의 송인수 총무는 "서울시교육청의 공문은 분명 잘못된 점이 많다"면서도 "그러나 이 종교교육 지침과 사학법을 연결하는 것은 더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내려온 종교교육 지침과 사학법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김성기 과장은 6월 12일 한기총 회의실을 찾아 이런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발언조차 하지 못했다. 김 과장은 회의가 끝난 뒤 자신도 교회 장로라며, 목사님들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문을 잘못 작성해 한국교회에 염려를 끼쳐 드린 점은 백번 천 번 사죄한다"면서도 "그렇게 오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렇게 안 믿어주시네"라며 안타까워했다.
결과적으로 진퇴양난에 빠져있던 한기총의 사학법 재개정 운동에 서울시교육청이 힘을 실어준 꼴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