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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든 가까운 할머니가 백합을 잡아 등에 지고 사막화가 진쟁되고 있는 갯벌을 끼고 돌아가는 도로를 걷고 있다. 내일도 내년에도 저 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두 손 모은다. 그레가 갯벌을 긁고 간 자욱처럼 여운이 길다.
ⓒ 최종수
지난 6월 6일 부안으로 가는 길, 모내기를 마친 들판에는 연푸른 벼 포기들이 푸른빛을 띠며 산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너머 새만금 바다는 정 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계화포구에는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반쯤 드러난 갯벌과 함께 선박들이 간신히 떠 있었다.

순간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중단하기 위해 선박농성에 참여했던 두 달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 나라의 공사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 것일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먹구름으로 몰려왔다. 그때 그 무렵이었던가. 대책위 간부들 중 일부가 농업기반공사와의 협상을 위해 그런다며 시민단체는 해상시위 농성장에서 나가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날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단체 회원들은 어둠이 깔린 계화포구로 돌아와야 했다.

▲ 지난 3월 주민들이 새만금 방조제를 점거하고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 최종수
물막이 공사 끝난 지 두 달

수천 년 동안 우리 선조들과 백성들을 먹여 살린 갯벌. 앞으로 또 수억 년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갯벌. 그러나 갯벌은 아무런 말이 없다.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남아 있는 생명들이 무수하다. 포구에 정박한 목선 한 척에서 노랑조개를 정리하는 어민들, 이마의 땀방울이 옹골지게 맺혀있다. 낯선 얼굴들은 아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던 바로 그 얼굴들이다.

"어젯밤 12시에 나갔다가 새벽 6시 반에 들어왔어요. 이 짓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그물을 끌어당기면 전에는 죽뻘(죽은 갯벌)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죽뻘이 엄청나게 따라 올라오고 있어요. 새만금 담수호 안이 썩어가고 있다는 증거지요."

"새만금 담수호의 물이 급속도로 썩어가고 있어서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농업기반공사의 TV 인터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요. 농업기반공사 관계자가 인터뷰에서 고백할 정도니 실제는 더 심각하다고 봐야겠지요?"

▲ 노랑조개를 그물에 담는 부부는 어업을 천직처럼 알고 살아온 성실한 부부이다. 그 일하는 풍경도 이마의 땀방울로 아름답다.
ⓒ 최종수
삽으로 노랑조개를 자루에 담는 어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바닷물에 반사된 햇볕에 그을린 아낙의 얼굴, 바닷물을 펌프질해서 노랑조개에 붙어있는 죽뻘을 씻어내는 아저씨, 숭어 한 마리를 들고서 포즈를 취해주는 선장, 여러 어민의 손을 거쳐 선박에서 1톤 트럭으로 올라오는 노랑조개 자루를 쌓고 있는 할아버지….

아침햇살이 파도에 일렁이듯이 희망도 아침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백합 선별을 마친 어민이 트럭으로 싣고 온 어린 백합을 선박에 싣고 있었다. 어린 백합은 다시 갯벌에 뿌려서 양식하기 위한 종패로, 어민들은 여전히 새만금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물막이 공사 막바지에 좁은 목으로 많은 갯벌이 휩쓸려 나갔어요. 우리 동네 만한 삼성풀(갯벌 언덕)은 물론이고, 소풀, 조개풀, 오줌풀이 사라졌어요."

"삼성풀이 사라지다니요? 3개월 전 저희들이 탄 선외기가 길을 잘못 들어서 그 풀에 프로펠러가 박혀서 갇혔는 걸요."

"소풀은 다른 지역의 갯벌보다 4미터가 높았는데 지금 그 지역 수심이 8미터가 됩니다. 그러니까 12미터의 갯벌이 물막이 공사 막바지 때 좁은 구간을 통해 바다로 빨려 나간 것이지요. 그곳에서 조개나 고기들이 산란을 한다고 해서 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인데, 그 풀이 다 사라지고만 것입니다."

"이곳에서 40Km 떨어진 위도 근해 수심이 40미터에서 20미터가 높아졌는데 그곳으로 밀려간 것이지요. 고창 해리는 바닷물 수위가 1미터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바닷물이 해리쪽으로 몰린 겁니다. 이것은 올 여름 집중호우에 침수될 지역이 많아지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아마 몇 년 안에 변산해수욕장도 죽뻘이 쌓여서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선유도 개발도 물 건너 간 것이지요."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쌀값이 폭락하고 있고, 농지가 남아도는 마당에 왜들 갯벌을 죽여 농지를 만들려고 한대요? 그리고 새만금 물막이 공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전 도지사는 어디로 갔습니까?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을 이제 누가 책임지냐고요?"

▲ 할머니들이 새벽부터 잡은 백합을 갓길에서 선별하고 있다.
ⓒ 최종수
"썩어가는 새만금, 이제 누가 책임지나요?"

조개들의 꽃인 백합을 그레로 잡는 지역으로 이동하던 중 도로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고기들이 갯벌에서 알을 낳듯이 머리에 수건을 둘러 쓴 할머니들이 갓길에 다리를 뻗고 앉아 백합을 선별하고 있었다.

"언제 나가셨는데 벌써 작업을 마치셨어요?"
"새벽 4시 30분에 나갔어요. 전보다 작업시간이 한두 시간 늘었는데도 예전의 반절 수준 밖에 되지 않아요. 자식들 대학까지 다 가르치고 손자 등록금까지 챙겨준 갯벌인데,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어요.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호미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백합을 등에 지고, 그레를 손에 들고 갯벌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갯벌을 끼고 휘어진 도로를 총총히 걸어가는 할머니는 그렇게 긴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내일도, 내년에도,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저 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본다.

할머니의 발자국을 되밟아 가는 갯벌에는 죽은 백합을 한 곳에 모아둔 조개껍질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무덤 먼발치에 박힌 짱뚱어 솟대의 머리는 마을을 향해 있다. 문득 여우가 떠올랐다. 고향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죽는다는 '수구초심'의 여우….

▲ 상단 왼쪽은 서해비단고둥이고, 오른쪽은 어린 백합이다. 하단 왼쪽은 적조생물이 죽어서 형성된 버금이고, 오른쪽은 죽은 새우들이다. 죽음의 갯벌이 되어가고 있다.
ⓒ 최종수
바닷물이 출렁이는 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죽은 조개껍질들 숫자는 늘어만 갔다. 동죽, 백합, 서해비단고둥, 맛조개, 길게, 새우, 노랑조개 등 바닷물이 들고 나는 수로에는 조개들이 떼죽음을 당해 있었다. 물을 찾아 안간힘을 다해 갯벌을 밀고 모였을 조개들이 물막이 공사로 막혀 물이 들어오지 않자 그만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았던 며칠 전만 해도 갯벌 위로 올라온 소금이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날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엊그제 비로 갯벌로 들어간 소금은 다시 하얗게 소금사막을 만들 것이다. 김제 새만금 거전 마을 앞 갯벌 지역에는 예기치 않는 소금먼지가 날렸다. 이를 막기 위해 갯벌을 트랙터로 갈고 염생식물의 씨를 뿌렸지만 부안지역은 주민들의 반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어민들의 마지막 양심마저 품삯으로 빼앗아 가고 있는 농업기반공사의 처사가 얄미울 따름이다.

▲ 죽은 숭어가 파도에 출렁이며 썩어가고 있다. 가는 포구마다 숭어의 시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 최종수
낮 12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 걸음보다 빠르게 들어오던 밀물이 거북이걸음처럼 느리다. 물막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밀물이 무서워 뛰어나온 적도 있었다. 그 기억들을 되살리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세히 보니 밀물 때인데도 물길로만 시냇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적조생물이 떼죽음을 당해 만든 검붉은 거품을 몰고서 느릿느릿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말뚝망둥어와 새끼고기들이 풀쩍 풀쩍 뛰어오르며 노닐고 있다. 그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누가 이 평화를 학살하는가!'

부안 문포 포구로 가보았다. 빈 선박들만 포구에 나와 어촌을 지키고 있었다. 두 달 전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은 마치 지진이 휩쓸고 간 땅처럼 거북등 모양으로 쩍쩍 갈라진 채였다. 심한 곳은 손이 들어가고도 남았다. 죽은 숭어 네 마리가 잔물결에 실려 썩어가고 있었다. 뜯겨 나간 달력 두 장의 시간이 이렇듯 갯벌을 황폐화시킬 줄이야…! 문포어촌계장인 이씨는 새만금의 허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100세대 주민들 중 80세대가 어민들입니다. 논 한 마지기 없는 어민들의 생계가 막막합니다. 정부는 이미 보상을 다 했다고 하지만 적게는 1년, 많게는 2~3년이면 바다에서 벌 수 있는 보상금입니다. 지금 40대인데 남은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5·31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이 일자리 창출인데 2만 명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새만금이 어떤 일자리를 줍니까? 농지를 분할하겠다고 하더군요.

30년 뒤에라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그때까지 썩은 갯벌이나 파먹고 살란 말입니까? 첨단공업단지를 만든다고요. 이 새만금 바다가 여의도에 50배에 달하는데, 남산 크기의 산 150개를 새만금 바다에 처넣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20조 이상이 들어간다는데 한 해에 2000억 정도가 투자된다고 해도 100년이 걸리는데 불가능한 일이지요. 미친 짓이지요."

▲ 어촌계장 어머니가 분통을 터트리며 정박한 배들을 가리키고 있다. 희망의 출구는 새만금 방조제를 터서 해수유통을 시키는 수밖에 없다.
ⓒ 최종수
오후 3시 이번에는 김제 장돌 마을로 가보았다. 둑을 경계로 논에는 파릇한 벼 포기들이 자라고 있고,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갯벌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둑을 경계로 생명과 죽음의 세계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왼쪽은 제방 아래 있는 하천은 이미 짠맛을 잃은 냇가가 되었고, 가리맛조개는 바닷물을 찾아서 70Cm 가량 갯벌을 파고 들어갔으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죽어 갯벌에 박혀 있다. 파도에 무너진 진흙갯벌의 단층이다.
ⓒ 최종수
미래 세대에게 새만금은 재앙

제방 가까이에 농수로처럼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어민들의 발길이 끊어진 갯벌에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으로 인해 화들짝 놀라는 말뚝망둥어들. 손가락으로 찍어 물맛을 보았더니 짠맛이 전혀 없다. 벌써 민물이 된 것이다. 한때 명성을 날렸던 가리맛조개들이 갯벌에 반쯤 머리를 내밀고 지천에 죽어 있기도 했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까지 수로였던 곳에는 죽은 조개껍질이 빼곡히 널려 있었다.

파도에 무너진 진흙갯벌에 박혀 있는 가리맛조개껍질. 세 뼘이 넘게 파고 들어가야 잡을 수 있는 가리맛조개마저 말라죽은 것일까? 광활한 갯벌에서 가리맛조개와 갯지렁이들은 짠물을 찾아 밑으로 밑으로 파고들었지만 바닷물을 만나지 못해 그만 죽고 만 것이다.

바닷가에는 널브러지듯 숭어가 썩어가고 있었으며, 생명력이 강한 왜가리마저 죽은 숭어를 반쯤 주둥이에 문 채 썩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바다와 갯벌까지 차지하려는 인간의 탐욕스런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그걸 극명하고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미래세대에게 월드컵은 꿈이지만 새만금은 재앙인 것이다.

▲ 바다와 갯벌까지 차지하려는 인간의 탐욕, 그 미래의 모습을 예언하듯이 숭어를 입에 물고 죽은 왜가리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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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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