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빈곤하면 정책은 엇나갈 수밖에 없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서민 경제라고 고개를 숙인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발언 이후 열린우리당 비대위 위원들은 가장 먼저 '부동산 정책'을 현안으로 끄집어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민심이 돌아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집 값 폭등'에 있는 것이지 조중동이 합창 하는 것처럼 '세금' 때문은 아니다.
열린우리당 일부 비대위 위원들은 선거 참패 원인을 부동산 보유세에서 찾고 싶은지 모르지만 이는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 95%
부동산 통계를 조금만 살펴봐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지난해 8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세대별 주택 보유 현황에 따르면 주민등록상의 1777만 세대 가운데 971만 세대(54.6%)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전체 세대 가운데 45.4%인 806만 세대가 무주택자라는 이야기다.
주택을 소유한 세대 가운데 1가구 1주택은 882만 세대로 전체 세대 가운데 49.6%이다. 두 가지 결과를 놓고 보면 집이 없거나 1가구 1주택인 세대는 1688만 세대로 전체의 95%에 이른다. 나머지 국민 5%가 집을 2채 이상에서 1083채까지 가진 다주택 소유자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집을 1채만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집이 없다고 정부의 공식 통계는 말하고 있다.
또 다른 통계도 있다. 건교부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32만 4000가구(가구원수 1130만명)가 최저주거기준(3인 가구 8.8평, 방 2칸, 부엌, 화장실) 미달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5명 당 1명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소유한 공공임대주택은 2004년 말 현재(건교부 자료) 33만 채로 전체 주택의 2.5%에 불과하다. 정부계획대로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을 100만채 건설해도 전체 주택 가운데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은 서민을 앞세워 전체 주택 가운데 1.2%에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종부세 대상자인 1.2%는 99.5%가 수도권에 몰려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유독 강남, 서초, 송파, 분당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토지정의시민연대, 환경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13일 오전 영등포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은 상위 1%만 배불리는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면서 "선거 참패 원인은 확고하지 않은 태도로 부동산 대책을 끌고 오고, 이해관계에 따라 타협을 일삼아 왔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이어 "정부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부동산 개혁 정책의 의지를 꺾는 것은 사망선고와 같다"고 경고했다.
5·31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7일 MBC <손에 잡히는 경제>가 전국 1589명을 대상으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내용이 있다(두채 이상 소유자- 110명, 한 채 –927명, 무주택-552명).
응답자들은 가장 필요한 부동산 정책으로 ▲ 분양원가 등 다른 방법 추가(29.5%) ▲ 공공택지에서 분양가 낮추고, 무주택자에게만 주택 공급(27.5%) ▲1가구 1주택 보유세 완화(12%) ▲종부세,양도세 등 세금 완화(11.1%) ▲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 (10.1%)▲세금 강화를 통한 정책의 일관성(9.9%)을 꼽았다.
굳이 나눠보면 분양가 인하와 세금강화가 67%, 세금 완화와 재건축 완화가 33%인 셈이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청와대와 계급장 떼고 토론해야 할 내용이 세금 완화인지 아니면 분양가 낮추기와 공공임대주택 늘리기인지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