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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첫 경기 상대인 토고와의 일전을 앞둔 12일 밤(미국 현지 시간). '한국 대 토고 전'이 한국 시간으로는 13일 저녁 10시에 열리지만 이곳 미국 시간으로는 13일 아침 9시에 열린다. 아이들은 이번 주부터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늦잠을 잘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알람 시계를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결전의 날이 밝은 13일 아침. 우리는 '원정 응원'을 떠나야 했기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웬 원정 응원이냐고? 월드컵이 벌어지는 현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슈타디온으로 날아가는 거냐고? 천만의 말씀!
우리가 원정 응원을 가는 곳은 멀리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우리 동네인 해리슨버그의 어느 한국인 가정집이었다. 우리집에선 월드컵 경기를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번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하는 케이블 스포츠 채널인 ESPN이나 한국 사람들이 즐겨보는 한국 방송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 미국 동부 지역(버지니아주)에서도 독일월드컵의 열기는 개막 전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많은 교민들은 우리나라 대표팀 평가전이 있는 날이면 이를 중계하는 한국 방송에 눈과 귀를 고정시켰다.
이들은 모두 축구 전문가가 되어 그럴 듯한 해설로 박지성 선수를 칭찬하기도 하고 아무개 선수를 욕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발행되는 주간지의 케이블 TV 광고 역시 '독일 월드컵 전64경기 독점 중계'라는 매력적인 미끼(?)로 일찍부터 교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몸은 미국에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한국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독일월드컵 열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우리집의 열악한 월드컵 시청 상황을 간파하고 인터넷으로 월드컵을 볼 수 있는지를 점검했다.
'오 마이 갓!' 인터넷으로는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없었다. 지난 봄에 있었던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과는 달리 이번 월드컵은 FIFA와의 계약에 의해 대한민국 국내에서만 시청할 수 있다고 했다.
실망스러운 공고문을 발견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 방송이 나오는 가정이 있어서 우리는 기대를 갖고 결전의 그날을 기다렸다.
"고추장 먹고 응원해야지"
바로 오늘 아침, 원정 응원을 위해 일찌감치 아이들을 불러 밥을 먹게 했다. 그런데 화사한 월드컵 복장을 이미 갖춘 아이들이 내려오면서 한마디했다.
"엄마, 오늘은 고추장에 밥 비벼 먹고 응원하러 가야겠어."
나는 속으로 '쳇, 네가 무슨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라도 되니?'라고 웃었다. 그러나 '응원 대표선수'인 만큼 우리 네 식구는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고들빼기와 된장국 등 한국 음식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뒤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러 떠났다. 물론 식구 모두가 응원 복장을 갖추고 말이다.
우리가 간 곳은 이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정은이네 집이었다. 정은 아빠는 한국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세탁소에 나가 볼일을 다 보고 들어왔다고 했다. 정말 한국인의 축구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린다. 특히 군대 갔다 온 한국 남자의 축구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이곳 미국에서 응원하는 한국인들은 국내 응원단과 다르지 않았다. 1대 0으로 실점을 한 뒤 내쉬는 한숨, 그리고 후반전에 터진 이천수 선수의 동점골에 모두가 환호하는 모습은 국내 응원단의 모습과 똑같았다.
"대~한 민국! 짝짝 짝 짝짝!"
이어진 안정환 선수의 결승골. 모두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기가 바로 이렇게 지다가 역전승한 경기가 아닐까. 이긴다는 보장만 있다면 모든 경기를 역전승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어쨌든 우리 팀은 이제 첫 단추를 잘 뀄다. 남은 경기에서도 선전을 하면 좋겠다. 우리 팀을 응원하는 건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들만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배달 겨레가 한마음으로 응원을 하고 있다.
오늘 경기가 끝난 뒤 남편은 피자 한 판을 사 들고 함께 공부하는 미국인 선생에게 갔다. 우리나라 승리를 자축하고 싶어서였다. 나중에 집에 온 남편에게 들으니 다른 미국 사람들도 우리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한국이 다음 상대인 프랑스전에서도 승리하면 또 피자를 사올 건가요?"
"Sure!(물론이죠!)"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월드컵 공화국'의 붉은 광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물론 이런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월드컵 대표팀은 오늘 우리 국민을 하나로 만들고 엔돌핀을 솟게 했다. 오늘만큼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