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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의 찻집에서. 메주 모양의 앙증맞은 풍경.
고창 선운사의 찻집에서. 메주 모양의 앙증맞은 풍경. ⓒ 한지숙
조선시대 양반의 집이라면 99칸 고래등 같은 집을 늘 떠올렸다. 방이 99칸이란 말인데, 시골살이 3년차로 지내며 시골집 방 한 칸에 이젠 제법 익숙해졌으니 아무리 작은 방이라도 '아흔아홉' 칸을 마당에 두고 산다는 것을 상상하면 그 숫자에 지레 질릴 정도이다.

연계정 옆의 대나무숲. 댓닢 소소거리는 시골집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연계정 옆의 대나무숲. 댓닢 소소거리는 시골집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 한지숙
골목길을 배회하듯 미로를 헤매듯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었을 듯하고 양반가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이 떠오르기도 하여, 세도가들이 집을 짓는다거나 이사를 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도무지 어울리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그릇의 모양이 다르듯, '집'도 어떤 생각을 담는가에 따라 다르게 지어진다.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그릇의 모양이 다르듯, '집'도 어떤 생각을 담는가에 따라 다르게 지어진다. ⓒ 한지숙
'미암일기를 읽다 보니, 관직에 머문 11년여 동안 여덟 번 이사를 했느니, 하물며 집을 짓는 장면까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 시절에도 형편에 따라 집을 증축하거나 옮기기도, 세를 들기도, 구입하기도 했었다는 그저 사람들의 평범한 살이였음을 느끼게 된다.

흙집 바라지창(들창)
흙집 바라지창(들창) ⓒ 한지숙
이사하며 집을 세(貰)로 얻는 경우, 요즘으로 말하면 전세삯으로 물품을 주고받은 내용이 있어 흥미로웠다. 전염병이 돌아 다급히 집을 옮겼을 때는 말 다섯 필을 건넸고, 요즘의 종로구 관철동에 해당하는 중부 장통방의 심봉원의 집을 얻을 때는 매달 고기나 생선 같은 반찬거리를 집세 대신 지불하며 6~7년을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

흙집의 벽
흙집의 벽 ⓒ 한지숙
남부 명례방동으로 옮길 때는 허술한 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우물도 있고 궁궐과는 거리가 멀지만 길이 험하지 않'으므로 아들을 시켜 안방의 벽을 종이로 바르도록 시켜 머물러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대목도 나온다.

늙은이가 서울에 올라와 무릎이 편치 않더니(白首還京膝末安)
좋은 집의 문을 열어주어 감사하오이다.(華堂偏荷許抽闕)


안쪽에서 올려다본 흙집 지붕. '전병통'을 중심으로 에돌아간 서까래가 가지런하다.
안쪽에서 올려다본 흙집 지붕. '전병통'을 중심으로 에돌아간 서까래가 가지런하다. ⓒ 한지숙
두 해 전 담양에 갔을 때 '미암일기'와 더불어 또 한 군데 들른 곳이 있다. 새로 집을 짓는 것이 아닌, 모텔의 일부를 황토집으로 리모델링하는 곳이었다. 전통찻집 '토우방'을 운영하는 전미석님의 소개로 찾은 곳. 내 손으로 흙집 한 채 지어올리고 싶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귀농의 꿈'을 말했더니, 근방에 황토집을 짓고 있는 곳을 가보라며 추천한 곳이다.

둥근 벽체의 창
둥근 벽체의 창 ⓒ 한지숙
아직 미완성인 채 흙담을 쌓아올리며 둥근 흙벽을 따라 작은 나무 둥치를 끼워넣는 집을 만났다. 화순의 흙집 짓는 것으로 잘 알려진 곳에서 시공 중이었고, 뒤따라 도착한 원장님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염색에 써 보려고 황토도 한 자루 얻어 왔었다.

전미석님의 '토우방' 마당에서 만난 토우들. 들꽃을 이용한 '석부작' 등 소박한 소품들이 많은 곳.
전미석님의 '토우방' 마당에서 만난 토우들. 들꽃을 이용한 '석부작' 등 소박한 소품들이 많은 곳. ⓒ 한지숙
지금 생각하면 내 손으로 손수 흙집 지어올리기가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꿈인가 씁쓸한 웃음부터 나지만, 귀농을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퍼올리는 그림이 집짓기에 대한 것이고 보면 어딜 가나 눈에 드는 시골집을 향한 관심은 결코 떨쳐낼 수가 없다. 이번 담양 나들이길에도 완공하여 영업중인 그 집을 스쳤으나 가끔 건너갈 곳이기에 언젠가 한 번은 마당을 밟아보리라 마음먹고 그냥 지나쳤다.

말간 볕이 드는 흙집. 황토로 물들인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고
말간 볕이 드는 흙집. 황토로 물들인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고 ⓒ 한지숙
'미암일기'의 연계정(蓮溪亭) 오른켠에 덩그렇게 빈집 한 채가 있다. 연계정에 올라 대나무 숲을 비껴 바라보면 그곳이고, 모현관 주위를 거닐며 끄트머리에 걸음이 멈춘 곳도 그 집 앞이었다.

볕 좋은 초여름, 작업에 몰두하지 못한 지 보름을 넘긴다. '집'에 대한 집착을 아직 떨구지 못했으니 마음도 온통 밖으로만 떠도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를 읽으며
그 시절 의식주(衣食住)를 들여다 봅니다.
짬짬이 공부해 가며 읽고 싶은 '미암일기'입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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