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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와 딸 손 잡고 주무시던 어머니
그러던 어머니께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서서 우리 부부의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몸 불편한 아내 또한 어머니 수발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큰 처형이 모시다가 처남댁에서 모셨습니다. 우리 내외가 어머니를 뵈러 갈 때는 가끔 우리 아이들을 찾으시며 우리 집에 계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 집에 모시고 사위와 딸 손을 잡고 주무시기도 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병환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거울 속에 보이는 당신 모습을 보시면서 무서워하시고 집밖으로 나가시어 파출소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아흔 둘이 되셨습니다. 언젠가 자식들이 "금년 생신이나 차려 잡수실지 몰라" 하였더니 과연 말이 씨가 되어 어머니께서는 그냥 꼼짝 못하고 누우셨습니다. 보름 동안 누워계시면서 부축하는 딸자식을 따라 화장실 출입을 하시더니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는 꼼짝을 못하셨습니다.
딸자식들이 어머니가 계신 아들네로 모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우리 내외도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미 쇠잔한 육신으로 숨이 가쁘신 듯하시더니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냥 날숨을 내뿜지 않으시더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일남 사녀를 기르시고 그 아래 손자 손녀 열을 돌보시느라고 보내신 세월 동안 호강은커녕 몸 고생 마음고생으로 살아오신 세월마저 어머니를 따라 갔습니다. 벽제 화장터에서 한 줌 재가 되시고, 장인어른을 모신 유골함에 함께 모셨습니다.
절에다 혼령을 모시어 제사를 올리고 49재도 끝났습니다. 어머니를 모신 처남댁 내외와 큰 처형과 간절하게 절을 올리며 "다시는 지금처럼 고생 마시고 좋은데 태어나세요" 하고 빌고 빌었습니다. 자기들 생활이 바쁘기에 불효를 했다고 인정하는 다른 딸자식들도 그런 마음으로 빌고 빌었습니다.
다들 모인 자리에서 저는 편지를 한 통을 꺼냅니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다른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떠나시면서 우리 자식들에게 하실 말씀을 편지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여기 저승우체국 소인이 보이시지요. 안 보여요? 어머니께서 저를 보고 유독 자기라고 부르셔서 제게만 보이나 보지요. " 저는 편지를 읽습니다. 중간 중간에 목이 메어 쉬기도 합니다. 듣는 가족들은 눈시울을 닦습니다.
저승에서 온 어머니의 편지
아이들아 너희들이 정성을 받고 떠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내게 나이를 묻지를 말거라. 나이는 처녀 시절에만 세야지.
꽃가마 타고 온 뒤에 세월은 세월이 아니란다.
나의 세월은 봄여름만 있는듯 하구나. 씨 뿌리고 일하다 보면 거두게 마련이 아니더냐. 그 모든 것을 내가 갖기보다 다 너희들에게 주었던 날들이 흘러갔구나.
이제 나의 낡은 육신은 주체하기 힘들게 늙었다.
거울을 보면 보이는 어머니 모습에 나는 늘 놀랜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지 아득한데도 불구하고 내 곁에 다시 오신 듯하고, 아니면 다른 늙은이가 나를 지켜보는 양 섬뜩하기에 놀랜다.
큰 딸아.
네가 말하기를 그 거울 속의 모습이 이 늙은 어미라고 하니 소녀인 나를 너는 잘못보고 이야기 한 것이겠지. 사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며 세상을 떠나신 나의 어머니 모습이 내게 나타나는 것임을 난들 왜 모르겠냐. 늙은 어미의 어리광이었단다.
내 마음은 나이를 거꾸로 세며 여러 해 전에 소녀가 되었단다.
자식들은 나를 망령 들었다지만 너희들 눈에는 안 보이나 내 눈에는 어린 시절 뛰놀던 앞산과 개울이 보인다. 도회지의 작은 골목에서 놀던 유년의 친구들이 손잡고 놀기도 하는구나.
나는 그 모습을 말하나 너희는 아니라는구나.
나는 보이는데 너희는 아니라는구나.
지금 보이는 모습이 진실이며 다시 밀려오는 과거 또한 내게는 현실이란다.
지난 세월 큰병 없이 살아온 내 삶이 참으로 고마웠으니 천지신명께 감사드린다.
내가 병들어 눕는다면 그 수발을 너희가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너희가 겪어야할 마음고생이 어디 한 둘 이겠느냐.
나는 때때로 내가 머물던 큰 딸아이 집을 나서고, 아들네 집을 나선다.
옛 동무가 있으려니, 이미 나를 두고 떠난 너희들의 아버지가 부르려니 여기서 헤매고 저기서 헤매면 문득 파출소 의자에서 너희들을 기다리던 때가 어디 한두 번 이었더냐.
길을 가면 옛 친구들이 있고 너희의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기도 하였단다. 기력이 달려서 집에만 있는 날에는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허공중에 보이는 옛 모습 옛 사람이 내 손을 잡고 나와 말을 나누기도 한단다.
너희에게 아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며 내 눈에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작은 행복을 느꼈단다. 때로는 하루에 몇 마디를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하고 나면 나 혼자 지키는 방에서 내게 찾아오는 사람들과 옛이야기를 해온 것을 너희들도 알지?
내가 기력이 쇠하여 자리에 누웠을 때 마음에 날개를 달고 멀리 가곤 한 것을 너희는 알아차리는구나. 울던 아이들아. 병석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며 힘이 들까하여 걱정하는 마음이며 너희들 말마따나 망령든 어미가 잠이 든 채 가기를 바라는 것은 불효가 아니라 만나면 이별이라는 세상이치임을 내 어찌 모르랴.
나는 누워서 기다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가야할 먼 여행을 차분하게 기다리는 마음이었지. 시간 시간 다가오는 죽음마저 서럽지 않았단다.
나를 지켜주는 아들아, 네가 곁에 있어 든든하고.
수발드는 큰 딸아이야, 네가 있어 편안하고.
며늘아기야. 병든 나를 지키는 너의 수고가 대견하다.
어미를 생각하는 셋째야. 너의 늦장은 바쁜 생활 때문임을 안다.
네째야, 병든 엄마가 무섭다고 하더니 내게 와서 기도하고 내 얼굴 쓸어주는 네 손길에 어미는 행복하다.
내 손을 놓지 않고 있는 막내야. 내가 너를 시집 보내고도 너의 집에 25년 세월을 함께 보낸 동안, 슬픔과 기쁨이 넘쳤단다.
내가 여기를 떠난들 너희 곁을 아주 떠나지 않는단다.
다시 먼저 가서 집짓고 옷 짓고 먹을거리를 챙겨서 너희들을 맞이하려니 이 어미가 장 보려 집을 비운 듯이 하려무나.
내 새끼들아. 너희들과 함께 하였던 슬픔도 괴로움도 기쁨이었구나.
어미의 흐리고 감기지 않는 눈에 흐르던 눈물은 작별을 생각하는 눈물이 아니란다.
지난 세월 품에 안겼던 너희 하나하나 먼저 보내지 않고 지금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먼저 떠나니 어미에게는 행복한 작별이 아니냐.
다시 보자. 모이는 날에 우리가 떠난 이 시간도 추억이야.
이제 갈 때인가 보다.
다만 할 말은, 이 한 세상 잘 살았다.
아이들아, 고맙다.
늘 너희를 생각하마.
어머니의 마음이 그러실 것이며 우리 또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가 떠날 것입니다. 4월에 떠나신 어머니의 함자는 조자 순자 행자이십니다. 우리 시대의 소리 소문 없는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다른 집의 어머니 또한 그러하시듯이.
1914년 갑인생 93세 조(趙)자 순(順)자 행(行)자
어머님께서 영면하시니 2006년 4월 3일 오후 3시 25분이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막내 사위가 헤아려 감히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