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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어느 날 걸려온 선배 언니의 전화.

“너, 다시 일할 수 있겠니?”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내 대답은 “물론 당연하지”였지만, 질문과 대답 사이에서 내 머릿속을 빠른 속도로 오간 것은 ‘다시 직장에 복귀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아니라 ‘7살, 4살인 두 아이들을 어디다 맡길 것인가’였다.

벤처기업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나는 한 유망한 벤처기업의 인터넷 팀장이었다. 쑥스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후배 여직원들에게는 하나의 롤모델이자, 회사에서 인정받는 팀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남편은 춘천에서,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주말부부였고, 결혼 후 곧 임신하여 첫아이를 낳았다. 임신 중에도 그리고 산후 휴가 기간 중에도 한 번도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터라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복직했다. 하지만 낮에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를 돌보고, 주말에는 춘천까지 아이와 함께 내려가 살림하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다 이제는 그 고생도 끝, 해방이다 싶었던 친정어머니는 다시 외손녀를 키우는 즐거움과 더불어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원인 제공자인 나와 친정어머니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커져만 갔다. 결국 나는 어려운 상황에 항복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전업주부가 된 뒤 어느 날 친정어머니와 우연히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가 너를 대학까지 가르친 것은(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다) 네가 나보다 낫게(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살라는 뜻이었는데, 너는 왜 사는 모양이 그러냐!(무릎 나온 허름한 추리닝에 목 늘어진 티셔츠 쪼가리나 입고)”
“나 사는 게 어때서?(애들은 어떻게 하고 내가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울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뒤 선배 언니가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큰아이는 유치원에 보내고, 유치원이 끝난 뒤에는 종일반에 보냈다. 그리고 작은아이는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의 형편을 아는 언니가 아이들을 맡기고 출근할 수 있도록 출근시간에 약간 융통성을 주었지만, 일은 하다 보면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라서 종일반 시간에 맞추어 퇴근해서 아이들을 챙기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은 다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간혹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눈치를 봐야 하고, 퇴근 후에는 주부로서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여유란 생각도 할 수 없는 생활이다. 하지만 덕분에 다시 잡은 기회를 잘 활용하여 경력도 살리면서 일을 할 수 있으니 어머니에게 감사할 뿐이다.

회사에서 마무리해야 할 보고서를 미처 끝내지 못해 어머니에게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래, 남의 돈 버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 그래도 저녁은 먹고 일해라”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셨다. 현재 내가 여러 몫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동지애가 느껴져 새삼 감동스러웠다.

퇴근 길 아파트 단지에 접어들면 아이를 업고 있는 할머니나 유모차를 밀며 지나가는 할아버지들을 심심찮게 본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표정이 항상 밝지만은 않다. 그분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저분들처럼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을 돌보게 될까?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추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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