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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신명나는 춤사위와 10여장의 탈을 벗고 나타나는 변검사의 얼굴.(출처: 광시뉴스넷)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신명나는 춤사위와 10여장의 탈을 벗고 나타나는 변검사의 얼굴.(출처: 광시뉴스넷)

"변검(變臉)의 국가 2급 기밀설은 사실무근이다."

지난 6일 중국 문예계와 언론은 국가기밀로 지정된 변검의 비기(秘技)가 해외로 유출되었다는 천극(川劇) 예술가 왕다오정(王道正)의 주장으로 시끄러웠다. 중국 국가문화부는 곧바로 변검이 국가기밀로 지정된 적이 없으며 <중국 국가기밀법 보호조례>와도 연관이 없다고 밝혔지만, 중국 전통예술의 해외 진출과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논란은 중국 문예계를 양분시키고 있다.

현대 변검의 아버지 왕다오정 "기술 유출자 색출해야"

우리에게는 영화 <변검>(The King Of Masks, 1995)으로 잘 알려진 변검은 중국 쓰촨지방에서만 전승되는 독특한 민간예술로 쿵푸를 변형한 다양한 동작과 부채 등의 도구를 이용해 얼굴에 쓴 탈을 순식간에 바꾸는 것을 말한다. 베이징의 경극(京劇), 쑤저우-난징의 곤극(昆劇)과 더불어 중국 3대 전통연희로 꼽히는 쓰촨성의 천극(川劇)이 변검의 모태이다. 변검은 19세기 말 저명한 천극 예술인 캉쯔린(康子林)에 의해 처음 세상에 선보인 뒤 1백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표적인 민중기예로 성장했다.

변검왕  현대 변검을 개발하고 독자적인 변검 공연을 창시한 '변검왕' 왕다오정.
변검왕 현대 변검을 개발하고 독자적인 변검 공연을 창시한 '변검왕' 왕다오정. ⓒ 모종혁
변검은 <귀정루>(歸正樓), <백사전>(白蛇傳) 등 천극 안의 한 공연 레퍼토리였다. 오랫동안 3장의 탈을 바꾸는 삼변화신(三變化身)의 격식에 얽매였던 변검을 오늘날과 같은 독자적인 예술로 발전시킨 이가 류충이(劉忠義)와 왕다오정. 1984년 홍콩 공연에서 류충이는 4장의 탈을 바꿔 삼변화신의 틀을 깨뜨렸고, 1987년 일본 공연에서 왕다오정은 독자적인 공연양식과 다양한 공연기구를 이용해 10장의 탈을 연이어 바꾸는 신기원을 이뤘다.

1996년 3분내 8장의 탈을 변환하고 한 공연에서 연속 24장의 탈을 바꾸는 기록을 세운 왕다오정은 중국 언론으로부터 '변검왕'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왕다오정은 지난 1월 자택에서 가진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세기 가까이 천극과 삼변화신에 얽매여 있던 변검을 독자적인 예술로 발돋움하게 한 계기는 나와 류 사형의 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검이 어머니 격인 천극을 뛰어넘어 쓰촨을 대표하는 민중예술이 된 데에는 끊임없는 연구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후학들과 함께 변검만의 공연양식과 의상, 면구, 도구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 변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왕다오정이 논란의 핵심에 섰다. 그는 지난 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2002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예술인이 변검을 공연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공연차 한국, 독일, 싱가포르를 방문해서도 현지 연예인이 오락장소에서 조악한 기술과 복장으로 변검을 공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왕다오정은 "일부 중국 예술인들이 금전적인 목적으로 외국학생을 받아 변검을 가르친다"면서 "보호받아야 할 중국 전통예술을 외국으로 유출시킨 이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3대 전통 오페라 중 하나인 쓰촨 오페라 천극. 최근 중국 젊은 세대들이 전통예술을 기피하면서 천극과 변검계가 유례없는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중국 3대 전통 오페라 중 하나인 쓰촨 오페라 천극. 최근 중국 젊은 세대들이 전통예술을 기피하면서 천극과 변검계가 유례없는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 모종혁

찬반으로 갈리는 중국 전통예술의 해외진출

중국 문화부 관계자의 확인으로 변검이 국가기밀이라는 왕다오정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중국 전통예술을 해외로 전파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홍콩 배우인 류더화(劉德華)의 변검 사부로 유명한 펑더화이(彭登懷) 쓰촨성예술학교 교수는 변검의 해외 전파에 적극 찬성한는 입장. 그는 "아무도 배우지 않고 보지 않는다면 무슨 존재 가치가 있느냐"면서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펑 교수는 "외국인이 변검을 배우더라도 중국의 예술유산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제자를 선별해서 택하고 자격이 갖추어질 때 공연케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핑(李平) 중국고대희곡학회 이사장은 "변검이 일반인들을 매혹케 하는 것은 신비성 때문"이라면서 "신비성을 잃게 되면 예술적 매력과 흡인력도 상실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변검 기술은 익힐지 몰라도 중국 전통문화의 정신까지는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변검이 마술과 같은 통속화된 기예로 전락한다면 중국 문화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쓰촨성 문화국의 한 관계자도 변검과 같은 전통기예가 더욱 비밀스럽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촨성 정부는 2004년 12월 시행된 <쓰촨성 전통공예미술보호조례>에 의해서 쓰촨성 내의 공예미술품과 전통기예의 예술인들을 보호토록 하고 있다. 이 조례는 민간절기나 전수예술인들의 정책 및 자금 지원과 기예기술을 기밀에 부치토록 내용을 담고 있다. 변검도 그 중 하나다.

이번 논란을 일으킨 왕다오정은 1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논점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돈의 유혹에 팔려 변검과 같은 전통예술을 무분별하게 상업화시키는 세태를 탓하고자 했던 것이다"며 "변검의 국가기밀 문제는 이런 와중에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에게는 변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전통은 깨졌다. 시대와 상업적 요구에 따라 1990년대 말부터 여성에게도 변검의 문호가 개방했다.
'여자에게는 변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전통은 깨졌다. 시대와 상업적 요구에 따라 1990년대 말부터 여성에게도 변검의 문호가 개방했다. ⓒ 모종혁
무분별한 상업화를 우려하는 노 예술인

왕다오정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 과정을 기자에게 설명하면서 "얼마 전 한 지인을 통해서 인터넷 상에 800~900위안(우리돈 9만6천원~10만8천원)에 변검을 가르친다는 광고가 나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쓰촨 예술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절기인 변검이 이제는 전업 예술인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들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한데 허탈했다"면서 "예술성을 상실한 변검은 단순한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기에 더욱 지금의 세태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왕다오정은 "본래 변검 예술인의 해외공연은 쓰촨성 정부 당국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고 있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외국에 나가 공연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최근 쓰촨성 내에서조차 천극이나 변검 공연이 전문적인 공연장에서 이뤄지는 것이 극히 적고 식당, 술집 등 오락장소에서 공연이 주로 행해지고 있다"면서 "변검이 전통적인 예술 가치를 잃고 쓰촨의 다른 민중예술처럼 길거리 공연으로 변질된다면 더 이상 중국을 대표하는 민중예술로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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