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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구 옆 화단에는 4개의 화분들이 마치 '앞으로 나란히'를 하는 모습으로 조르르 놓여 있었습니다. 각자의 화분에는 한 포기씩 고추모가 심어져 있었는데, 정성껏 가꿔서인지 튼실하게 잘 자라 있었고 풋고추와 빨간 고추들이 보기 좋게 열려 있었습니다.
탐스럽게 열린 고추를 바라보면서, 제가 처음 떠올린 단어는 '화분 텃밭'이었습니다. 그 화분 텃밭에 열린 풋고추가 어찌나 싱싱해 보이던지, 몇 개 따다가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서 된장에 찍어 먹으면 밥 한 그릇쯤은 금세 뚝딱 해치울 것 같은 생각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화단을 지나갈 때마다, 그 화분 텃밭에 눈길을 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초가을 무렵, 화분에 심겨져 있는 고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각자의 화분마다 아주 작은 배추 모종 몇 포기가 옹기종기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 배추 모종도 쑥쑥 잘 자라더니, 어느 날 건강하고 튼실한 한 포기만 화분에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그 모습이 다르게 잘 자라던 배추도 예전의 고추처럼 그곳을 지나는 저의 시선을 붙잡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엔 푸릇푸릇하게 잘 자란 배추 속을 꽉 채우기 위함인지 노끈으로 묶어 놓기도 했습니다. 유난히 탐스럽게 잘 자란 배추를 보면서 저는 기어코 경비아저씨께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저기 저 화분에 심어 놓은 배추는 아저씨께서 직접 가꾸시는 거예요?"
"아~ 저 배추요? 아니요, 우리 동에 사시는 주민이 심으신 겁니다"
"그래요? 지난 여름에는 고추농사를 잘 지으시더니, 이제는 배추농사까지 잘 지어 놓으셨기에 저는 아저씨께서 심어 놓으셨나 보다 생각했어요."
저의 그런 이야기에 경비아저씨는 '허허'하고 웃으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해에도 그 화분 텃밭에 지난해처럼 고추가 심어져 있는 것이 문득 제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해와 다른 점은 화분과 화분 사이의 아주 작은 빈틈까지도 놓치지 않고 고추모종을 심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화분 윗부분을 비닐로 씌워 놓았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훨씬 알뜰해진 솜씨에 저도 모르게 도대체 저 화분 텃밭을 가꾸시는 분이 어느 분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아파트 단지를 오가며 저와 인사를 주고받았을 분일지도, 아니면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마주했던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하얀 고추꽃이 피었고, 어른 손가락 크기만한 고추도 여기 저기 열려 있었습니다. 아마 저렇게 열린 고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서 여름 내내 주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겠지요?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지난해처럼 화분에는 배추 모종이 심어지겠지요?
화분 텃밭 옆의 울타리에 핀 꽃에서 부지런히 꿀을 채집하는 꿀벌의 날갯짓을 보면서, 저 작은 텃밭을 가꾸시는 분의 알뜰한 손길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 옴을 느낍니다.
아침이면 출근을 하고 어두운 시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탓에, 텃밭주인이 직접 텃밭을 가꾸는 모습을 아직까지 목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뜰하고 야무지게 텃밭을 가꾸는 텃밭 주인을 꼭 만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