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제재와 북한의 6자회담 참가 지연으로 한반도 상공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움직임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외 언론은 북한이 연료 주입 단계에 도달했거나 마쳤다며, 미사일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움직임을 최우선적인 정보 수집대상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일본 정부는 연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남한 정부 역시 북한에게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그 정치적·군사적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자, 군사적 억제력 구축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미사일 발사설,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설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광명성1호(대포동 1호)를 발사한 이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설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위협설은 미국 매파들의 오랜 숙원이자 미일동맹 강화의 상징인 미사일방어체제(MD)와 맞물려 왔다.
미국의 매파들은 MD와 관련된 중요 법안이나 예산 심의를 앞두고 "북한이 쏜다, 쏜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이는 미국 내에서 MD 구축의 최대 명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매파들의 기대를 뒤로 하고 1998년 이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해왔다.
당시 북한의 광명성 1호 발사는 미국 내에서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MD 구축 등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비증강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론이다. 더구나 당시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논란까지 겹치면서 미국 내에서 '북폭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은 "기다리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제네바 합의 이행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망할 것 같다던 북한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는 3단계 로켓을 발사했고, 이는 미국 내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게 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포용정책을 기조로 한 페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를 채택한 데에는, 당시 김대중정부의 적극적인 개입도 큰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의 MD 구축 '촉진제'와 대북정책의 '각성제' 역할을 동시에 했던 것이다.
북한 미사일, 미국까지 날아갈 능력은 있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설이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발사 징후가 포착된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데 있다. 만약 미국이 우려(?)하는 것처럼 북한이 ICBM을 발사한다면, 이는 북핵 문제와 맞물려 '북한위협론'을 새로운 궤도 위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ICBM 개발에 성공했는지는 극히 불확실하다. 우선 미국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 클린턴 행정부 임기인 2000년까지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2015년까지 ICBM 개발이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MD 구축에 사활을 걸었던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 이러한 분석은 '확' 바뀌었다. 이렇다 할 설명 없이 북한이 ICBM 개발에 임박했다거나 이미 성공했다는 분석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기술적인 관점에서도 의문이 든다. 통상 ICBM 개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기술개발에 성공해야 한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3단계 로켓 ▲탄두를 지구 궤도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우주발사체(SLV)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탄두가 고열에 손상되지 않게 하는 재진입 기술이다.
북한은 98년 발사를 통해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3단계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 소형 위성을 지구 궤도상에 올려놓는 데에는 실패했다. 또한 ICBM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미사일도 핵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과대평가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미국은 과대평가를 통해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는 한편, MD 등 군비증강의 명분으로 이용할 수 있고 실제로 그래왔다. 반면 북한은 '군사적 모호성'을 통해 외교적 지렛대로 이용하는 한편, '강성대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해왔다.
그래도 북한이 쏜다면? 자책골!
관심의 초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여부이다.
'발사설'이 한달 넘게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예전에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던 한국정부가 긴장하고 있는 모습은, 미일 양국의 주장을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발사대에 미사일 장착 및 연료 주입 움직임 포착 등 구체적인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역시 예전의 발사설과는 다른 모습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금융제재의 효과에 고무된 나머지 도통 자신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 부시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또한 주한미군 후방 재배치로 인해 상실될 위기에 처한 야포의 억제력을 대체할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 '강성대국'의 자부심을 높여 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 이는 '역전골'이 아니라 '자책골'이 될 공산이 크다. 부시행정부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핵문제와 마찬가지로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할 것이다.
오히려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일본과 함께 대북 제재의 수위를 높이는 한편, 한국과 중국에게도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고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나올 것이다. 아울러 '부분적인' 참여에 그치고 있는 한국을 다그쳐 MD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또한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이 몇기의 장거리 미사일로 북한보다 약 200배의 군사비를 쓰고 1만개의 핵무기와 정밀 타격 및 MD까지 보유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억제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다. 오히려 안보 딜레마의 늪에 빠지면서 미국 주도의 비군사적인 공격에 더욱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게임의 성격을 반대로 볼 필요도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설은 부시 행정부의 고도의 외교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부시 행정부는 연일 발사설을 경고하고 나섬으로써 외교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미국 안팎에서 점증하는 대북정책 변화 요구를 제어하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초청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문제가 미사일 문제에 가려져 공론화가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한에게도 득보다 실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역전골'이 아니라, 북한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는 '자책골'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이 미국의 금융제재와 대화 거부라는 거친 태클에 흥분해 경기를 망치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