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을 길게 한 셈이다. 언제부터 기점을 잡냐면, 과천지방자치개혁연대를 시작한 게, 올 2월이다. 2월 7일 회원모집을 시작했다. 작년 말 지역신문을 비롯해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과 준비하고 있었는데, 민주노동당에서 과천 지역구 양쪽에서 모두 후보 낸다고 해서 당황했다.
그래서 경선을 위해 과천지방자치개혁연대를 만들어서 회원을 모집했다. 373명이 모였다. 본인들이 직접 가입했고, 거기서 정치토론회도 했다. 3월 19일 예비후보등록이었기 때문에, 3월 초 경선이 끝났다.
'회원' 모집을 한 이유는, 양쪽 후보들이 가까운 사람들 막 끌어들이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역의 시민단체, 생협, 노동조합, 민주노동당원 등을 대상으로 했다. 일반 시민을 모은 게 아니라, 진보적이고 생태적인 지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회원들로 제한한 것이다.
나름대로 선거 과정 치열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 과정에서, 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조직과 정책 그리고 유리한 선거판 지형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보자가 겹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 경선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선거운동도 했나?
"5일간, 온-오프라인을 통해 경선을 했다. 그런데 거의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어쨌든 오프라인도 열어놨다."
경선 때문에 '상생'
- 결과는?
"3월 5일 끝났는데, 371명(2명이 등록무효) 중 79%가 투표를 했고 여기서 이겼다."
- 후보가 둘이었나? 민주노동당후보와 서형원?
"(끄덕) 그래서 민주노동당 황순식씨가 '나'선거구에서 출마했고, '가'선거구에서는 지방자치개혁연대 단일후보로 내가 출마했다. 황순식씨도 민주노동당에서 지방자치개혁연대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그 분은 경선한 건 아니지만 참여했고 이후 의회활동도 협력해서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지원했고, 당선됐다. 우리 나이로 서른인데, 인기 짱이다."
-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경선을 받아들였나?
"다 오프 더 레코드인데…. 민주노동당에도 나서겠다는 분은 있었다. 지역에서 실제로 네트워크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겹치기 해서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그리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실 지역에서 3년 전부터 여성 후보를 내자는 얘기가 있었고, 사실 제가 그 사무장을 했어야 하는 건데…(웃음). 그리고 민주노동당도 원래 나올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여성 후보는 만들지 못했다. 작년에는 생활정치 모임이라고 해서 지방자치 참여 문제에 대해서 간담회도 열고, 거기에도 민주노동당이 참여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당공천이 되면서, '따로 후보 낸다'고 하니까 논란이 됐다. 어떤 분들은 좀 황당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경선을 제안했고 민노당이 받아들인 것이다."
- 특별히 오프 더 레코드 할 사항도 아니군. 민주노동당으로서도 좋은 경험이고, 앞으로 성장하고 활로를 찾기 위해 널리 알려야 할 사안이다. 지방자치개혁연대를 만든 게 결과적으로 양쪽 후보 다 당선시킨 데 기여한 셈이다.
"스토킹하듯 지역을 훑었다"
- 선거운동과정에서 특이할 만한 것이 있나.
"자원봉사 선거가 가장 컸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에너지를 남김없이 사용했다. 이 좁은 동네에서 매일은 아니지만 아침 인사 40명씩 나갔으니까. 거의 모든 길목 지키고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얘기하고 설득했다. 인구밀집 지역의 연고자를 찾아내서 조직 선거를 했다.
결국 승부처라 할 수 있는 별양동에서 1등을 했다. 대부분 후보들이 거기 살고, 난 이쪽 중앙동 살았는데도 말이다. 우리 선거 모토가 '유쾌한 변화, 아이들이 행복하도록'이었는데, 30-40대 학부모, 특히 주부들, 조직도 그런 분들이 했다. 저도 거의 스토킹하듯이 그런 분들 따라다녔다. 정책도 학교급식, 환경, 보육 중심으로 내세웠다."
- 당선 소감은?
"일단 다른 지역에서 당연히 되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떨어졌으니 어깨가 무거워진 셈이다.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다른 지역에도 영향 줄 테고, 다음에 출마하는 사람에게 기호 10번 물려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지역정치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초록당 빨리 만들겠다"
- 정당을 추진하는 건가?
"지역정치네트워크는 정당과 거리 있는 일이기 때문에 풀뿌리 정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초록당도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한나라당에 대한 대안을 못 찾아서 다들 고민인데, 초록대안에 대해 강력하게 이야기할 정책그룹이랄까, 그런 역할을 하는 집단을 만들고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생각이다.
그게 지역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인데, 어쨌든 분명한 건 지역 풀뿌리 정치의 주체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활동을 접고 남김없이 다 짜내서 선거운동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 나 자신이 지역정치에 적합한 후보도 사실 아닌데…."
- 그런데 왜, 지역 주민들이 뽑아줬다고 보나.
"우리가 원래 여성 후보 내겠다고 할 때의 문제의식은 지역에서 성실하게 활동한 사람이면 누구든 당선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도 개선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정당공천 없앤다고 하긴 하는데, 다음 선거 앞두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
선거 앞두고 힘들었다. 예비후보 때 보면, 저 놈 똘똘한 후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번호도 없고 이상한 놈 취급하니, 나중엔 사람 만나는게 겁나더라. 이쪽은 번호도 없고, 정당 후보들은 첨부터 번호를 찍어서 나오니까. 이쪽이 약세 후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한 번 아찔했고, 두 번째로 한나라당 쪽으로 막판에 50-60%대로 올라섰을 때 또 한 번 아찔했다."
- 과천시의원으로 준비해야 할 일은?
"우선 제도로는 정보공개조례 개정안을 내려고 한다. 정보공개 수준이 위원들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청구를 해도 내놓지도 않는다. 웬만한 자료들은 알아서 공개하도록 할 생각이다. 그리고 참여예산제는 내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후보자 한 사람의 입으로 현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제도를 빨리 정비해서 시민들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생각이다."
7명 시의원 중 2명... 5명을 설득할 수 있을까
- 7명 시의원 중 민주노동당 한 사람, 서형원 당선자 이렇게 두 사람인데, 두 사람이 나머지 다섯 명 설득하는 거 쉽지 않겠네?
"거부도 쉽지 않을 거다. 거부하면 장외에서 시민발의를 해서라도…. 선거 막바지에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것은 견제할 사람 한 사람을 집어넣어주면 종이쪽지를 집집마다 붙여서라도 호소하고 민심을 모아서 들어가서 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민발의 방식으로 하고 잘못된 정책 알리겠다고 했는데, 어쨌든 의원들 입장에서 그렇게 된다면 부담이 클 것이다. 그리고 예산낭비, 학교급식문제 등 할 일은 정말 줄줄이 많다.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 남들 다 떨어졌는데, 무소속 기호 10번을 달고도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다고 보나?
"지역 풀뿌리운동의 힘이다. 예전 90년대 초반 과천 시민모임 시절(지금의 과천 환경연합)부터 지역 시민운동의 단단한 기초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가 지역 시민운동의 선구적 사례인데, 시립 보육시설 청원이나, 논란은 많았지만 여기서부터 수돗물 불소화 문제를 제기했다.
또 최근 생협의 경우 아주 드물게 서울 한살림 산하가 아니라 독립된 과천 한살림이 생겼다. 가구수의 10%, 2천여 가구를 포괄한다. 그리고 학교평화만들기같은 단체는 학교폭력 왕따 문제를 다루는데, 이름은 아름답지만 굉장히 센 조직이다. 왕따 때문에 자살한 아이가 있었는데 거기에 분노한 학부모들의 모임으로 매우 전투적이다."
- 공동육아도 있지 않나?
"공동육아가 세 개, 대안학교가 세 개. 그 외에도 발도르프 교육모임이 있다."
- 어떤 거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안학교다. 자유학교라고 부른다.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가 창시한 대안교육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우리는 자유(발도르프)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12년 통년제로 운영하고, 유치원도 있다. 우리나라 대안학교, 공동육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쨌든 그쪽 역사도 막강하다."
15년간 풀뿌리 운동이 그를 당선시켰다
- 방과후 학교는 없나?
"지역아동센터 개념으로 되면서 한 다섯 개 정도 생겼다."
- 그건 시에서 지원하나?
"한 200만원. 그러나 맑은내방과후학교 만들 때는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그래도 후원자만 200명 유지하는 잘 되는 조직이다. 그걸로 에너지를 확인했다. 두 번째로 지역사회 활동가 협의체로 <우리가 만드는 과천의 미래(우리미래)> 만들었다. 여기서 2004년 말 마을회관이라는 지역신문 만들었다. 1만부 정도 찍었는데 나름대로 성과 있었다."
- 과천시민모임부터 시작하면 10년 이상 이곳에서 활동한 건가?
"15년 가까이 된다. 이번 선거 치르면서 경선 과정에서 옛날에 함께 했던 사람들, 후원회 선배들까지 다 참여하고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선거과정이 네트워크 형성 과정이었다. 그렇게 두텁게 해놨기 때문에…."
결국 서형원씨의 당선은 15년간 갈고닦은 지역운동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기호 10번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함께하는시민행동 홈페이지(action.or.kr)의 '에피소드'란에 실린 <하승창의 길떠나기> 칼럼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