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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경이의 생명력을 닮고 싶은 날
ⓒ 장옥순
"여보, 냉장고에 넣어둔 쑥으로 국을 끓이지 왜 호박된장국을 끓여?"
"호박이 상하려고 해서 끓인 거예요."

요즘 마음이 심란하고 오십견까지 와서 아침에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천근이다. 그래도 남편 곁으로 왔으니 고생하는 그를 위해 끼니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와이셔츠를 다린다. 그래서 아침이 바빠졌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즐거울 때는 모든 일이 행복하건만 근래 며칠은 그렇질 못했다. 아이들 때문에 울고 웃는 내 삶이 참 어설프다. 벌써 지천명인데 아직도 이렇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 좌절하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싫다.

아니, 그들은 내 삶의 거의 모든 의미였고 내 시간을 바친 삶의 터전이었기에... 더 깊이 말하면 내가 너무 집착하며 살았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교실을 직장으로 알고 잠시 몸담은 동안만 나를 할애해 주는 공간으로 삼았다면 이렇게 연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을 만나는 그곳은 200여 일 동안, 그리고 그 후로 쭉 내 삶과 연결되곤 했었다.

교단에 서 있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 삶이 지금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남들보다 먼 길을 달려 돌아온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반추해 보며 짧은 순간 바쁘게 먹던 호박된장국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스무 살의 언저리에서 어느 해 봄에 호박이 처음 열릴 때부터 끝물 때까지 줄기차게 먹었던 호박된장국. 정말 몇 달은 족히 먹었으리라. 무남독녀였던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한답시고 진학하지 못한 학교 대신 주경야독으로 향학의 열기를 식히던 때였다. 말만한 처녀가 갈아입을 옷도 변변치 않아서 저녁에 빨아서 덜 마른 옷을 아침에 입고 나가서 밤 10시가 되도록 시골 읍내의 도서관을 괴롭혔었다.

가난을 이기려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성화에도 불구하고(요즈음 말로 하면 비정규직) 안정된 일자리를 찾는다며 돈벌기를 마다하고 1년 가까이 책과 씨름할 때, 반찬값이 없어서 울타리에 심은 호박으로 끼니마다 된장국을 끓여 먹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랜 동안 호박을 참 싫어했었다. 물리도록 먹었으니... 그런데 이제 그 호박된장국 앞에서 가슴 아린 추억이 되살아 오르는 것은, 그리고 그 가난했던 날이 그리운 것은 무슨 이유인가? 호박된장국을 먹으면서도 풋풋한 희망이 있어서 좋았던 탓이리라. 이제는 뭘 먹어도 그때만큼 맛있지 아니하니 배부른 투정 앞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꿈만 꾸면 뭐든 이룰 것 같았던 그 젊음이 그리워서 지금 나는 호박된장국을 일부러 끓이려 한다. 가난조차 부끄럽지 않았던 그 당당함이 그립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던 그날들이 그리워서...

▲ 내 생애의 아이들
ⓒ 장옥순

덧붙이는 글 | <에세이> <미디어 다음> <샘터 일기장>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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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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