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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보다 무서운 무료 컨텐츠

종이 신문의 적은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호된 공격을 당했던 이른바 조중동 신문들이라면 청와대에 포진하고 있는 386 보좌관들이나 내친 김에 <오마이뉴스>가 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조중동 신문들은 기사에 대한 해당 부처의 적극적인 반론과 소송, 관련법의 개정, 독자들의 반대 운동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조중동 신문의 침체를 정권과의 대립 탓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만약 정권과의 대립으로 조중동 신문이 어려움에 처했다면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놓인 신문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논조를 가진 한겨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조중동 신문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립은 오히려 각각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최근에는 서로의 논박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 이르렀다. 조중동 신문의 위기는 종이 신문 전반에 불어 닥치고 있는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고 있고 이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지난 6월 7일 폐막된 제59차 세계신문협회총회(WAN)와 제13회 세계편집인포럼(WEF)에서도 인터넷과 무료신문을 통해 뉴스를 보는 '무료 세대'(Free Generation)를 끌어안는 것이 신문의 미래와 생존에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무료 컨텐츠가 전통적인 종이신문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인터넷에서 시작된 무료 서비스가 오히려 오프라인에 영향을 주고 있는 대한민국에선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출근길 풍경이 되어버린 무료신문

▲ 출근길 무료신문은 이제 일상 풍경이 되었다. 최근 종이신문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온오프를 넘나드는 무료 컨텐츠다.
ⓒ 장익준
최근 아침 출근길을 장식하는 새로운 풍경이라면 지하철 역마다 늘어서 있는 무료신문 배포대일 것이다. 경쟁이 심한 곳에서는 자기 신문을 상징하는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나서 적극적으로 신문을 나눠 주기도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타블로이드판 무료신문을 읽고 있고 그들이 내리면 지하철 선반에 무료신문이 가득차는 것도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다.

무료신문 배부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지하철 가판대의 왕자라 할 스포츠 신문들이었다. 다른 일간지들보다 100원 더 받으면서도 위세를 떨쳤지만 무료신문 배부에 밀려 가판 판매는 거의 끊겼다고 할 수준이다. 한때 가판대 업주들을 중심으로 무료신문 배부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료 컨텐츠를 바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이길 수는 없었고 이것이 바로 무료세대의 힘이기도 하다.

무료신문에 밀린 스포츠신문이 거꾸로 무료화가 되는 상황도 빚어진다. <스포츠한국>은 아예 무가지가 되어 거리에 나섰고 대부분 일간지가 발행하는 스포츠신문들의 경우 일간지 구독의 대가로 함께 서비스로 공급되는 신세가 되었다. 스포츠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일간지들도 다른 신문사의 스포츠신문을 구입해서 끼워주는 경우까지 생겨 돈 주고 스포츠신문을 보는 사람은 바보인 셈이 되었다.

스포츠신문을 몰아낸 무료신문은 행복했을까? 한때 무료신문들은 하루가 다르게 창간될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나중에는 만화 전문, 블로그 전문 등 분야별 시도까지 있었지만 무료신문을 상대로 하는 광고시장에는 한계가 있어 지금은 크게 네 개 정도의 무료신문이 공존하는 구도로 정착되었다.

인터넷 포털 뉴스의 힘

▲ 포털에서 제공되는 뉴스는 인터넷 사용자는 물론 사회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네이버·다음
인터넷 포털에서 제공되는 뉴스는 종이신문들에겐 애증의 대상이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무료신문보다 더 위협적인 무료 컨텐츠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 얼마 정도는 인터넷에 접속하기 마련이고 이곳에 올라오는 뉴스들은 종이 신문에 비해 속도도 빠르다. 인터넷 접속 비용이 들기는 하겠지만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이곳도 무료 컨텐츠다.

그렇다고 포털을 외면할 수는 없다. 종이신문들은 포털에 뉴스를 제공함으로써 일정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이곳을 통해 자체 신문사 사이트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차라리 공급 가격 현실화를 바라지 포털에 뉴스 공급을 끊는 일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포털사이트 파란이 스포츠신문 컨텐츠를 독점하자 스포츠, 연예 기사를 공급하는 작은 인터넷 신문사들이 생겨난 사례가 있다. 포털에서 요구하는 뉴스의 양은 신문 하나를 채우는 것보다는 적기 때문에 신문이 포털을 외면한다 해서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신문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도 "인터넷 포털을 경쟁 상대로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종이신문들은 포털과 불안한 동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종이신문들은 포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뉴스 유통만을 하던 포털들이 최근에는 나름의 편집 기능을 발휘하고 의견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 시대인 만큼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포털 뉴스가 편향되어 있다"는 주장을 연이어 내보냈고 청와대도 "포털도 언론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서로 앙숙이던 조선일보와 청와대가 의견일치를 볼 정도로 뉴스에서 포털이 가진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나름의 평형, 종이 신문의 반격

▲ 최근 신문들은 구매력있는 중장년층을 위한 컨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자녀교육이나 논술에 대한 컨텐츠가 대표적.
ⓒ 장익준
무료 컨텐츠의 공격과 종이신문의 방어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무료신문 업계가 자체 정리된 것처럼 광고 수익을 바탕으로 하는 무료 컨텐츠의 공격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털 뉴스도 선두 그룹들 중심으로 정리가 된 상태지만 후발 주자들은 이를 뒤집기 위해 뉴스 독점을 위해 돈을 쓸 여유는 없는 상태다. 한때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인터넷 뉴스 공급사들도 시장의 한계에 맞춰 정리되는 추세다.

무료 컨텐츠의 공격과 종이신문의 위기가 세계 수준의 공통 사항이었다면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정권의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권과 종이신문(또는 조중동)의 대립도 최근 일정정도 소강상태에 이르고 있고 역설적으로 이런 다툼이 조중동엔 반면교사의 효과도 있었다는 점이다. 정권과의 대립을 통해 조중동은 자기 논조를 강화하고 현 정권을 반대하는 독자층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에 주력해서 고정층을 확보하는 전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는 "신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논평에 주력하고 주말판 서비스를 확대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대한민국 종이신문들도 무료 컨텐츠가 줄 수 없는, 돈을 주고 신문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개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신문사들은 각종 섹션을 늘리고 별지 특집을 늘리고 있다. 특히 자녀교육이나 건강관리처럼 돈을 주고 정기구독을 할 수 있고 신문보기라는 오래된 습관을 가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면을 늘릴 여유가 적은 신문들은 탐사보도나 기획특집 같은 차별화된 기사를 승부처로 삼고 있다.

종이신문의 위기에는 무료 컨텐츠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한국만의 특수한 사정이 맞물려 있다. 제일 나쁜 것은 끼워팔기로 전락해 버린 스포츠신문처럼 출혈경쟁 속에서 신문이 그 가치를 잃고 저급 컨텐츠가 되는 것이며 이런 현상이 강화될수록 돈을 주고 신문을 사 보는 독자만 피해를 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종이신문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것이라면 적절한 가격에 양질의 컨텐츠를 공급하는 매체로 남아야 할 필요성은 독자의 권리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국어능력 인증시험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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