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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피었던 난이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책상위에 난을 보면서 옛 어르신들이 왜 난초를 좋아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난초의 성질 때문 아니었을까요.
난초는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한 장태산 휴양림의 세코야 나무처럼 거창하게 자라서 결국엔 상업용으로 쓰이기 위해 잘려나가지 않습니다. 봄에 활짝 피는 '꽃의 여왕' 장미처럼 화려하게 한 시대를 주름잡다가 퇴색해 빛바랜 채 시들고 다음 세대 꽃들에게 왕위를 넘겨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길바닥의 잔디처럼 힘겹게 연명하듯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아무 힘도 없는 잡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난초의 곧고 푸른 잎은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일관되게 색을 유지하며, 햇볕을 쬐지 못해도 강인하게 살아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와 만납니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난의 어느 구석에 저토록 청초하고 단아한 꽃이 숨겨져 있었을까요.
이슬처럼 줄기에 맺힌 것을 눈여겨봤습니다. 솔직히 '저게 뭘까, 꽃을 피우느라 힘들어 땀을 흘린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처럼.
난에게 죄라도 짓는 것처럼 미안한 마음으로 그 이슬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습니다. 오, 그 달콤한 맛이란… 꿀 같으면서도 꿀맛보다 더 고소하고 달콤했습니다. 이럴 때 적절한 어휘를 구사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 맛을 보면서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1주일에 한 번 정도 물만 주었을 뿐인데, 햇볕을 직접 쬐지도 못하고 그저 사무실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화분의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 난의 어디에서 꿀이 만들어진 것일까요? 나비가 날아온 적도 없고 벌이 날아든 것도 아닌데…
그 위대함이 몸서리쳐지도록 두렵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보였습니다.
저 난에서 조용하면서 길게, 그리고 아름답고 고고하게 살 수 있는 인생 철학을 배우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봅니다.
어차피 요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저 난처럼 살고 싶습니다. 곧고, 항상 푸른 뜻과 희망을 품으며,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저 난처럼 잔잔한 나만의 향기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