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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동행한 둘째 딸과 함께 한 김형자씨(오른쪽)
인터뷰에 동행한 둘째 딸과 함께 한 김형자씨(오른쪽) ⓒ 김재경
그는 자녀보다도 훨씬 어린 학생들 틈에서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마침 저녁 근무라서 어머니의 인터뷰에 동행하게 되었다는 경찰관 둘째 딸은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는 "항상 존경스럽고, 가장 닮고 싶은 분이 어머니였다"며 "학생들 틈에서 잘 하실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흥미롭고 즐거워 하시는 걸 보니 적극 밀어드린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엄마한테 못하는 얘기 있으면 모두 해봐라. 나도 아들에게 못했던 얘기 털어놓을 테니..."

김씨는 학생들과 격의없이 얘기한다. 학생들은 주로 며느리 감은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나. 부모님의 장례식 절차에 따른 납골이나 매장에 대해 묻는다고. 평소에는 생각이 없어 보이다가도 토론 시간만큼은 진지하게 내면의 깊이를 드러낸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교수님이 들어오시면 토론은 언제나 끝이다.

오민석 군은 "처음에는 솔직히 부담도 되고 어른 앞이라 말도 가려서 해야 되는 어려움도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어머니한테 못하는 이야기 등 많은 도움이 돼요"라고 말한다.

젊은 학생들과 수업을 받고 있는 김형자씨(앞줄 오른쪽)
젊은 학생들과 수업을 받고 있는 김형자씨(앞줄 오른쪽) ⓒ 김재경
그러자 곁에 있던 학생들은 "우리하고 어머니는 34살 차이가 나지만 맛있는 것 많이 사 주시니 좋아요" 이구동성이다.

학생들은 같은 반 동기지만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는 "아줌마 아닌 어머니라고 부르니 마음이 무겁다"며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때로는 밥도 사주고 MT때는 맥주박스를 디민다고.

군 입대하면 "잘 다녀 오라"며 등을 토닥여 주고, 맹장 수술한 학생에겐 어머니 심정으로 열일 제쳐두고 달려가면 금세 웃음으로 화답하는 학생들이 자식만큼이나 사랑스럽다.

그는 "공부는 애들 못 따라가요. 모르면 자꾸 묻게 돼요. 그래서 너희들 내 옆에 앉으면 귀찮을 것 각오해라"하고 양해부터 구한다고 한다.

강준모 교수는 "개강 첫날 출석 인원수를 세어보니 한 사람이 남아요. 알고 보니 아드님이 어머니 수강신청을 안내하려고 왔다고 하던데 얼마나 기특하던지요. 처음 면담할 때는 부담스러웠지만, 수업도 빠지지 않고 모범적이라서 어린 친구만 있는 반보다 수업 분위기가 좋아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고등학교도 못 나왔어요. 공부하게 된 동기라면 갈산동 야유회 때 닭고기를 먹고 급체하게 되었지요. 그때 손 마사지로 체증을 풀어준 분이 너무 고마워서 '원장님 고맙습니다'를 수없이 하고 돌아보았을 때 그는 소아마비 약사였어요."

집에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그 분은 몸이 장애지만, 나는 머리가 장애라며 자녀들에게 가슴속에 드리워진 배우지 못 한을 토로하게 되었다. 부모를 끔찍이 생각하던 자녀들은 늘 당당함 속에 감춰진 어머니의 한을 볼 수 있었다.

그 길로 작은아들은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 "어머니도 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해 보라"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니 제일 어려운 것은 영어였다.

큰아들은 수학을, 작은아들은 영어로 어머니를 돕기로 자청했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가 공부할 때는 설거지도 척척해 놓고, 4남매 모두가 교사가 되어 약속도 취소하고 어머니께 매달렸다.

동료 학생에게 모르는 것을 배우고 있는 김형자씨
동료 학생에게 모르는 것을 배우고 있는 김형자씨 ⓒ 김재경
검정고시 날은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 그 결과 김씨는 1년만에 고등학교 과정의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찹쌀떡을 사왔던 사위는 시험에 붙었다고 흔쾌히 식사 대접까지 하며 장모의 합격은 온 가족의 축제가 되었다.

안양과학대학과 대림대학에 동시에 합격되었지만 먼저 둘러 본 지금의 캠퍼스는 늦깎이 학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입학했을 때의 기쁨이란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고.

학생증을 받았을 때 "이젠 나도 여대생이구나" 너무 기쁘고 흥분이 되어서 학생증을 보고 또 드려다 본 그녀였다.

반 학생들은 어머니 대하듯 언제나 앞자리를 비워두고, 식사나 MT때는 먼저 챙긴다. 교수들도 할말이 있으면 "제 방으로 오시지요" 깍듯이 경어를 쓴다고.

학교에서는 교수 식당을 권유하지만, 학생신분이기에 학생식당을 이용한다는 김씨는 학생들과 어울리며 신나게 손뼉 치며 즐거워하는 새내기일 뿐이다.

김씨는 사업가 남편(57세)사이에 4남매(2여2남)를 둔 어머니며 외손녀의 재롱에 푹 빠진 할머니다. 큰딸은 검찰청, 사위는 법무부 과천 종합청사의 공무원이며 작은딸은 경찰관이다. 사윗감 역시 사법고시에 합격한 재원으로 과천종합청사의 공무원이라고.

두 아들은 모두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다. 남편 역시, 늦깎이 공부에 도전하는 아내가 자랑스럽긴 마찬가지. 친구를 만나거나 친목회에서도 "나 여대생하고 산다" 먼저 자랑부터 해서 종종 박수갈채를 받는다고.

그는 "통장 장학금은 자녀는 되지만 정작 본인은 안 된다고 하네요. 안양시 이래 통장이 대학 간 일이 없다고 해요"라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현재 갈산동의 통친 회장으로 통장 10년째인 그는, 지역의 일꾼으로써 안양5동에서 9년을 부녀회장으로 봉사했다고.

그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1등을 고수하는 형제들과 다르게 공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결혼 전 한복 점을 운영했던 그는 자신의 예복을 직접 만들 정도로 솜씨가 출중했다.

언제나 활달한 성격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공개하는 그녀에겐 가족간에도 비밀이란 없다. 오직 믿음과 신뢰가 있을 뿐이다.

"못 배운 사람도 겁내지 말고 하면 되니까 용기를 내서 대학에 왔으면 좋겠어요"라며 그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우리안양>에도 송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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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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