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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정치인의 풀(pool)이 화려하고 풍성해졌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근혜 전대표, 한명숙 총리, 강금실 전장관, 전여옥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이종호

한명숙, 박근혜, 강금실, 전여옥, 장상, 김영선….

여성정치인의 풀(pool)이 화려하고 풍성해졌다. 이미지와 캐릭터, 리더십별로 다양하다. 여성 국회의원의 숫자는 여전히 적지만(297명 중 41명으로 13.8%) '대표급' 선수들이 늘면서 영향력은 훨씬 커졌다. 더 이상 남성 정치의 들러리가 아닌 면모를 보이고 있다. 국무총리·대권주자·당대표 등의 자격으로 뉴스에 오르내린다.

['어머니' 한명숙] '여성운동 1세대' 한명숙 국무총리는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어머니 같은 이미지로 익숙하지만 오숙희(여성학자)씨는 "현실과 이념을 조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인물"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정치수업도 두루 쌓았다. 장관 2번(여성·환경), 국회의원도 비례대표로 들어갔지만 지역구에서 싸우고 돌아와 자력으로 재선 배지를 달았다.

대권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국무총리 임기를 어떻게 끝내느냐 하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 오씨는 "대선 후보로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카드가 나온다면 열린우리당에선 한명숙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상속녀' 박근혜] 여당의 대표가 9번 바뀌는 동안 추풍낙엽과도 같은 당대표 자리를 지키며 임기를 채웠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신 과거사' 공격, 사학법 통과 위기, 신행정수도 내분 등 당 안팎의 공격이 있었지만 중진급 남성정치인(김덕룡·강재섭 원내대표)의 '희생플라이' 선에서 수습되었다. 그의 한 측근은 "이재오 의원의 '독재자의 딸' 발언이 박 전 대표로서는 가장 참기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꼽았다.

여성계에선 박 전 대표에 대해 "부모의 지분과 향수를 상속받았지 자기 영역이 없다"며 '상속녀'라는 시각이 강하지만, 이번 '피습' 사건을 통해 보인 위기관리 능력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머니를 대신한 퍼스트레이디역, 18년 동안의 야인 생활은 그를 '준비된' 지도자로 만든 자산이라는 해석도 있다.

['자유인' 강금실] 서울시장 선거 기간, 그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박선숙(전 청와대 대변인)씨는 "기존의 정치언어로 담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한다. 또 조은씨(사회학 교수)는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공·사 언어가 다른데 강 전 장관은 공사 영역을 왔다 갔다 한다"고 여성성의 솔직함을 특징으로 꼽았다. '진정성'을 무기로 내세운 그는 선거판에서 자신의 개인성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정치에는 왜 진실이 통하지 않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그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사람과 나눔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먼길을 가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최근엔 또 미니홈피를 통해 "7·8월 휴식과 충전의 기본으로 일정을 보내려 한다"고 지지자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서울 시민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을 만나게 될 '국토순례'를 계획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자 돌쇠' 전여옥] 그에게 '여자 돌쇠'란 별명을 부여한 이는 강준만 교수였다. 그가 모주간지의 '준비하는 죽음'이라는 설문에서 "맹수와 싸우다 먹이가 되겠다"고 말한 점을 들어 '적을 향한 호전성', '몸을 사리지 않는 화끈한 지지' 등의 특성을 일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에게 정치는 '전쟁터'이고 자신은 '전사'로 인식된다. 그의 언어에는 유독 폭격, 사격, 사수명령 등 군사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전쟁터 무기는 독설이다. '대졸 대통령', 'DJ 치매', '노 대통령 연산군' 발언 이후 네티즌들의 융탄 폭격에도 자신의 홈피가 건재하자 "전쟁터에서 이겼다"고 표현했고, 지방선거 승리 이후 작성한 글에선 "한나라당은 이제 장렬한 전사를 각오하고 앞장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초선임에도 오는 7월 당대표 선거에 나설 정도의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여성 몫' 최고위원을 넘어 어느 정도 지지로 당선될지 관심사다.

[김영선·장상·김혜경] 이 외에도 김영선 한나라당 대표, 장상 민주당 공동대표, 김혜경 전 민주노동당 대표도 있지만 아직 우뚝 선 모습은 아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원희룡 최고위원이 물러난 뒤 차점자로 '24일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의욕에 비해 내공이 딸린다는 평가다.

장상 대표는 한화갑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가 되면서 '최초의 남녀 공동대표'라는 평가도 있지만 절차에 잡음이 있어 대표성이 부족하고 '대리인'이라는 시선도 따라다닌다. 김혜경 전 대표도 민주노동당의 '포스트 권영길' 체제를 이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다가 30대 후보에게 밀려 낙마했다.

[그림자] 여성정치인에게 드러워진 이미지 '독'

김진애(건축가)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목을 받았던 박근혜·강금실에 대해 "승패를 떠나 콘텐츠가 확연히 부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두 여성 정치인에게 드리워진 구원자, 희생자, 스타 이미지는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김씨는 "강금실은 바람(강풍)으로 떠서 바람(오풍)으로 졌다"며 "서울시장이라는 자리가 '바람'으로 좌우돼선 안된다"고 말한다. 준비된 후보가 아닌 스타 이미지에 의존한 신데렐라식 등장은 되려 자기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피습 사건으로 주가가 높아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불쌍한 이미지(동정론)는 대권 후보가 되는데 좋지 않다"며 "상대와 싸우면서 형성된 것이 아닌 '봉변'처럼 당한 것은 부정적 이미지를 남긴다"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의 빰'은 불행한 가족사와 겹치면서 '과거' 이미지가 강화된다는 우려도 있다.

또한 이들의 등장에는 '구원투수'라는 동기가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탄핵이라는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등장한 '표 앵벌이 소녀'라는 소리를 들었고, 강 전 장관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무현의 대리인, 정동영의 구원투수'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한명숙 총리에게는 궁지에 몰린 여권이 야당을 의식해 택한 '무난한 카드'라는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 지난 3월 10일 오전 국회에서 여야 여성의원들과 여성단체 `생활자치 맑은정치 여성행동`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지방선거 자치단체장 후보 중 최소한 10% 이상을 여성에게 공천할 것을 각 정당에게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빛] '가산점'이 필요 없는 정치인의 등장

불우한 동기는 자력으로 극복되었다. 박 전 대표는 총선뿐만 아니라 몇 차례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대권 주자로서의 기반을 닦았고, 강 전 장관은 '72시간 불면 유세'라는 자기 상품을 통해 '아름다운 패배'라는 인상을 남겼다. 몸을 던진 투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 둘은 '결혼 밖'에 존재한다. 직장과 가정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악전고투해야 하는 '수퍼맘' 컴플렉스에서 자유롭다. 양성의 지지를 고루 받을 수 있는 코드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체제에서 강 전 장관은 보다 과격한(?) 처지다. 유지나(영화평론가)씨는 "나는 강금실이 이혼녀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며 "삼종지도(아버지·남편·아들)에서 독립한 여성으로서 20·30대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 강 전 장관은 40대 이상 여성들에게선 '비토'가 강한 반면, 20대 여대생이나 30대 직장여성들 사이에선 높은 지지를 얻었다.

고은광순(한의사)씨는 "박근혜는 아버지의 그늘 밑 존재지만 강금실은 '가산점'이 필요 없는 정치인"이라며 "정치적으로 미숙한 여성이 이제는 보호받지 않아도 두발로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반면 감수해야 할 위험도 크다. 선거를 거치면서 강 전 장관을 둘러싼 가족사 등 사생활에 얽힌 마타도어가 여론의 저변을 관통했다. 강금실 캠프에서 '조직'을 담당한 이인영 의원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성이 이토록 공고한지는 몰랐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정현백 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독신여성에 대한 허용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정도"라며 "아직은 독신여성보다는 결혼한 여성이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한명숙 총리가 강 전 장관에 비해 프리미엄을 얻는 대목이다.

정씨는 "독신여성에 대한 사회의 수용 범위가 더 넓어져야겠지만 동시에 여성들도 가족이 아니더라도 인간 보편이 추구하는 '공동체주의'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결혼과 이혼 과정에서 강금실이 보여준 인간적 면모, 넉넉한 스케일이 남성들에게도 어필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근혜든, 강금실이든, 한명숙이든, 이들이 제시할 공동체주의 '상(像)'이 궁금해 진다.

"강금실, 여성 차별화 정책 제시 실패"
여성 유권자, 동별지역육아센터 지정〉구별 재산세 전환〉거점 명문고 설립 순 지지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이라고 특별히 친여성적인 공약이나 복지정책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의회에 출마한 22명의 여성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한 김민정 교수(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는 "여성 후보들은 친여성적인 공약이나 여성들의 주요 관심사인 청소년 교육문제나 탁아문제, 여성과 서민의 복지문제 등을 강조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빗나갔다"며 "2004년 총선과 같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정책·인물보다는 정당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김형준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는 강금실 후보 공약에 대한 성별 평가를 통해 "남녀간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며 "강 후보가 초기 단계에 여성 차별화 차원에서 여성 유권자를 공약하는 공약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강 후보 공약 중 여성들은 동별지역육아센터 지정(24.8%)〉구별 재산세 전환(21.1%)〉거점 명문고 설립(16.9%)〉신도심 프로젝트(13.0%)〉서울시청 용산 이전(1.4%) 순으로 지지했지만, 남성의 경우 구별 재산세 전환(23.8%) 거점 명문고 설립(18.0%) 신도심 프로젝트(16.6%) 동별지역육아센터 지정(16.3%) 서울시청 용산이전(2.0%)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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