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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가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 서녕이.
ⓒ 김영우
월드컵의 환호와 응원의 열기가 가득했던 6월의 함성 속에서 하루하루를 가난과 두려움, 그리고 시련의 연속 속에 살고 있는 탈북자 모녀를 만났다.

상처 많고 한 많은 탈북자 김분옥(40)씨. 그녀는 신체장애(5, 6번 경추 추간판 탈출증)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직장조차 구하기 힘든 데다가, 딸 서녕(6)이마저 불치성 혈액질환(림프종 악성종양)을 앓고 있어 앞날이 막막한 상태다.

분옥씨는 지난 1998년 북한을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 중국 흑룡강성으로 들어갔다. 중국 공안 당국의 눈길을 피해 이곳 저곳을 떠돌며 2년여를 도피해 살던 중 그곳에서 한국계 중국인을 만나 서녕이를 낳았다고 한다.

비록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지만 불안감은 떨칠 수 없었다. 갓 한 살을 넘긴 서녕이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발과 엉덩이가 기형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없는 형편도 물론이었지만 중국 공안 당국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하는 분옥씨는 서녕이를 병원으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분옥씨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입국시켜준다는 브로커 권아무개씨를 만나게 된다. "800만원을 주면 한국에 가서 서녕이의 치료는 물론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권씨의 말을 듣고 입국 경비를 지불하고, 분옥씨 모녀가 지난 2003년 먼저 입국했다.

이후 남편을 한국에 입국시켜줘야 할 권씨는 분옥씨 모녀가 입국한 후 3년이 지난 현재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상 권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으며, 남편과는 현재 연락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 종양으로 인해 절단한 서녕이의 발을 지씨 할아버지가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서녕이 엉덩이 부분의 수술자국(오른쪽 사진).
ⓒ 김영우
분옥씨는 입국 후 적응을 위해 교육을 받는 '하나원'에서 건강검진을 통해 서녕이의 병명을 알게 됐다. 병명은 불치성 혈액질환인 '전신 림프종 악성종양'이었다. 서녕이가 앓고 있는 이 질환은 혈관을 타고 옮겨다니기 때문에 언제 어느 신체부위에 발발할지 모르는 질환이라고 한다.

담당의사인 정호윤(경북대학교병원 성형외과)씨는 "서녕이는 현재 등과 엉덩이, 그리고 양발에 거대 림프기형이 형성되어 있다"며 "이미 수 차례 수술을 시행했었으나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찰과 검사를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종양의 상태에 따라 전신마취 수술이나 경화요법을 계속적으로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천만원 이상의 수술비가 들 것"이라고 말했다.

▲ 김분옥씨가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서녕이의 등을 가리키고 있다.
ⓒ 김영우
하나원을 나온 분옥씨 모녀에게 주어진 건 정부에서 마련해준 10평 남짓한 대구의 한 임대 아파트와 정착 지원금 1천만원이었다. 하지만 정착지원금은 서녕이의 병원비와 생계를 꾸려 가기에는 부족했다. 더군다나 분옥씨는 돈을 벌고 싶어도 목 디스크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 분옥씨는 같은 탈북자 출신인 이아무개씨로부터 부산에 있는 'OO네트워크'라는 회사에 1천만원을 투자하면 매월 120만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옥씨는 서녕이의 치료비와 생활비가 절실했기 때문에 이씨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고, 같은 탈북자 출신인 사람에게서 받은 제의라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도 120만원의 이자는커녕 이씨와 그 회사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이미 회사 사장은 문을 닫고 도주했다. 분옥씨는 주위 도움으로 그 회사를 상대로 고소를 해서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돈을 되돌려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탈북자 모녀에게 도움의 손길 준 지씨 할아버지, 그러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옥씨를 향한 도움의 손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회 적응을 도와주는 대구 달서경찰서 정보과 소속인 김종식 형사의 주선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택(71)씨를 만나게 된다. 지씨 할아버지는 한국 사회에 실정에 어두운 분옥씨가 정신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씨 할아버지는 정부지원금을 사기 당한 분옥씨를 자신의 조카가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변호사사무실에서 무료로 사건을 맡아주도록 도와주고, 서녕이의 병원비가 모자랄 때 자신의 남은 퇴직금 일부로 보태주면서 서녕이의 양할아버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 역시도 생활보호대상자인 지씨 할아버지의 경제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지씨 할아버지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텔레비전이나 사회단체에 사연을 보내서 도움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 오는 7월이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서녕이 뒤로 지씨 할아버지가 긴 한숨을 내쉬고 있다.
ⓒ 김영우
분옥씨 모녀가 사는 관할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는 "지난 2월 동사무소의 추천으로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를 통해 수술비 100만원과 구청에서 긴급 지원금 30만원을 지원해 준 적이 있다"며 "하지만 서녕이의 경우는 평생 수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서녕이를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해서 사회의 온정이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6살 서녕이는 지난 3년여 동안 다섯 번의 수술을 통해 2개의 왼쪽 발가락은 절단했고, 기형으로 웃자란 엉덩이의 뼈 제거수술 등을 받으면서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서녕이에게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병을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한편, 7월이면 서녕이는 다시 병원에서 이미 기형으로 자라기 시작한 오른쪽 발등과 등으로 찾아온 종양을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수술비가 없어 수술을 받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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