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원을 다니지 못한 지도 이미 오래다. 생활비에 쪼들려 빚을 얻어 쓰는 것도 이제 한계다. 아내가 벌어오는 월 70만원으로는 최저생계를 꾸려가기도 어렵다.
코오롱에서 해고된 한 노동자는 과천 코오롱 본사와 광화문 열린 공원 농성장을 오가며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비정한 도심거리 차량 물결 속에 원직복직과 공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해고자들의 열망은 묻히고 만다. 몇 푼 안 되는 알량한 돈으로 해결하려는 기업주에 맞서 그들은 외친다. "돈이 아니라 일터를 원한다."
수십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고압선 철탑에 올라가 처절한 단식 농성도 했다. 서울로 상경해 성북동 코오롱 회장집까지 찾아가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며 위원장이 동맥을 절단하는 투쟁도 벌였다. 청와대가 보이는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호소도 해 보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경찰 특공대는 여지없이 사지를 비틀어 끌어내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이 가는 곳 어디든지 경찰의 24시간 밀착 감시는 계속된다. 신경과민증상은 물론이고 인권침해까지 당하고 있다.
구미에 있는 코오롱 공장은 2000년 6월 노동자들이 파업하자 그 해 7월 직장을 폐쇄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노사간 대립이 시작된 것은 2004년 들어 파업, 해고, 직장폐쇄, 노조위원장 구속, 코오롱 제품 불매운동을 거치면서다.
코오롱 사측은 2005년 2월 경영상 긴박함을 이유로 78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였다. 그러나 해고자 중 한 노동자가 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면서 2006년 들어 본격적인 투쟁이 전개되었다. 사측은 선거 당시 노조선관위원들을 매수해 수천만 원대의 유흥비와 전세금, 도피자금 등을 제공하여 노동부로부터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500일 동안 죽는 것 외에 안 해 본 투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생존의 벼랑에 선 노동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한 번의 겨울까지는 견뎌냈지만 두 번째 불볕더위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해고된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공장 내에는 사측의 희망퇴직 강요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가시방석 위에 앉아 있는 분위기다. 김천공장으로 전환배치 등 구조조정은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그 자리에서 절반 가까이 임금이 깎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정규노동자의 신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한때의 동료였으나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
한때의 산업전사에서 한국경제를 이토록 성장시킨 주역들은 자본의 구조조정과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에 묻혀 죽어가고 있다. 거기다 한미FTA협상까지 겹쳐 투자자의 무한정한 자유와 노동자의 파업권은 철저하게 봉쇄되고 있다. 한국이 한미FTA협상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외치는 섬유산업 노동자들은 이렇게 기업과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들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권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공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파산지경의 가정을 다시 옛날로 되돌려 놓는 일이 남은 임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