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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발생한 학생들의 대규모 식중독 사건 때문에 월드컵 열기에도 학교 급식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저도 몇 해 전에 학교급식과 관련해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고, 주변에 급식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관심있게 언론 보도를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들은 잘 안 되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느껴 몇 자 적습니다.

직영이냐 위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 한 학교 조리실 모습(자료사진)
ⓒ 윤평호
이번 대규모 식중독 사건은 위탁급식업체에 납품된 식자재가 오염돼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워낙 많은 곳에 납품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식중독을 일으켰고 그래서 더욱 큰 사회적 이슈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분들이 직영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사실 위탁이냐 직영이냐만 놓고 본다면 직영이 더 안전해보이고, 더 질좋은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많은 학교들이 직영으로 운영하면서 위탁으로 운영할 때보다 훨씬 좋은 급식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요.

또 만약 식중독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이렇게 대형사고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기에 직영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직영이 위탁에 비해서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직영이냐 위탁이냐 하는 경영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학교 급식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몇해 전부터 인터넷에는 부실하고 불량한 학교 급식에 대한 글들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현장에서 찍어서 올리는 급식 관련 사진들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지요.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부 당국과 어른들은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우리 어릴 적에는…" 하면서 '배부른 소리' 하는 아이들을 질책하는 모습조차 보이기도 했습니다.

학교 급식에 종사하는 이들조차 "이 정도 비용을 갖고 이런 마인드에서는 그런 음식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번에 크게 터져서 그렇지 학교 급식을 먹고 식중독(배탈을 포함)을 일으키거나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건은, 보고되지 않은 것까지 따지면 한 달에 한두 건은 일어나는 흔한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식중독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게 '상납 바이러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은 급식 형태가 문제가 아니라 급식으로 이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직영급식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사 A씨는 "직영으로 급식을 운영하면 인건비 외에 나머지 돈을 식재료비로 운용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식재료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도 학교측 인사와 친분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가격 대 품질이 좋은 제품보다는 '아는 업체' 것을 받을 때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조리 과정에서도 제대로 자격을 갖춘 조리원은 임금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초보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위생 관념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기도 합니다.

위탁급식업체 조리원인 B씨는 "정해진 자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조리 과정에서 위생적인 문제가 생겨도 웬만하면 그냥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고백합니다.

납품업체를 운영하고 C씨 역시 "제품의 품질을 좋은 것으로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단가를 맞추려면 좋은 것만 쓴다는 것은 어림없는 이야기"라면서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가 아닌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공식적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있지만, 위탁업체 선정과정에서 일정금액이 뒷돈으로 학교에 제공되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고 알려져있으며, 직영에도 교사들은 학생과 동일한 급식비를 내지만 음식의 질은 월등히 뛰어난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식중독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게 '상납 바이러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까지 있겠습니까?

식자재 관리에 정부는 손 놓았다

직영이든 위탁이든 이렇게 내부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것에 더해서 급식에 사용되고 있는 식자재마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더욱 답답하게 합니다.

지난 중국산 김치 파동 때 여러 개로 흩어져 있는 식품안전 관련 업무를 식품안전처를 신설해 일원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다만 이번 사건 이후 정부에서 급식 납품 업체를 신고제로 바꿔서 관리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것이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미지수입니다.

때문에 직영이든 위탁이든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는 업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학생들이 피해를 본 이후에야 손을 쓸 수 있는 현실입니다.

독이 든 밥 먹일 수 없다

현재 학교 급식은 단순하게 "아이들이 도시락 싸오는 게 힘드니까 학교에서 밥을 주자"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선생님들도 대부분 학교 급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여서 그저 "밥이란 배가 부르고 거기에 영양가가 있으면 만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돈에만 가치를 두고 식사의 질보다 어떻게 하면 이윤을 많이 남길까 생각하는 못된 어른들의 생각이 모두 독이 되어서 학생들의 먹을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 선생님이 기사에 쓰셨듯이 학생들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300끼를 학교에서 먹는데 그것들이 어른들의 욕심이라는 독이 든 식사라면, 그런 밥을 당신의 자녀가,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학교 급식은 이제 단순하게 "아이들이 편하게 먹는 밥"을 넘어서 "아이들의 육체적 인격적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문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터지고서야 '급식업체에 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를 관리하겠다'거나 '학교급식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겠다'는 처방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 열기가 사그라지면 얼마나 그것이 실행이 되고 제 구실을 할 지 의문입니다.

이번 기회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학교 급식에 대한 명확한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직영이든 위탁이든 식재료부터 조리과정과 운영까지 자세히 살피고 감사할 수 있는 법률과 기구를 만들어야 하며, 이것과 관련된 부정과 비리는 아주 엄중히 처벌해서 다시는 어른들의 검은 욕심이 아이들의 귀중한 밥을 짓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급식을 바로 세우는 것은 단순히 밥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급식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급식을 받는 아이를 둔 학부모도 아닙니다. 다만 주변에 급식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제가 지적한 잘못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시는 많은 급식 관련 종사원분들께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시락과 급식 기사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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