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정판수
그런데 어젯밤 모임이 늦게 끝나 차를 몰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어둡기도 했지만 곡선길에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아 천천히 몰다가 이내 순탄한 도로가 이어지자 다시 편한 마음에 핸들을 풀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길바닥에 희끄무레한 게 보이는 게 아닙니까. 브레이크를 억지로 밟으면 멈출 수 있었으나 속도가 어느 정도 붙은 터라 빗길에 미끄러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찰나간의 판단에 그냥 치고 나가기로 했지요.

정체 모를 물체를 지나칠 무렵 아, 저는 그게 산토끼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도 녀석의 새빨간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제발 어느 쪽이든 움직이면 그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틀어도 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녀석은 얼어붙은 양 그대로였습니다.

ⓒ 정판수
제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 위를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움직이지만 않으면 위로 스치듯이 지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지요. 아, 그런데 녀석의 위를 지나친다고 느끼는 순간 뭔가 차체 하부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록 아주 가벼운 부딪힘이었지만 부딪힘을 느낀 건 분명하였습니다. 차를 세우고 가서 살펴보려 했으나 이미 상당히 지나온 터이고 되돌릴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어젯 밤 내내 기분이 엉망이었습니다. 심지어 온갖 잡된 꿈이 계속되어 잠을 설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차를 천천히 몰다가 어제 사건현장(?)에 이르자 잠시 차를 세운 뒤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다행히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 부상을 입고 주변에 있나 하여 살펴 보았으나 조그만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사람들의 보편적 마음인지 어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어제 비가 내렸다 하더라도 사고가 있었다면 흔적이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 정판수
이렇게 마음먹고 다시 차를 몰았으나 마음만은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갔느냐?"
제발 어젯밤 아무 일 없었기를 ….

덧붙이는 글 |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에서 달 ‘月’과 내 ‘川’의 한자음을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