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춘년에 결혼하면 잘 산다'는 믿음 때문일까? 올해는 유난히 결혼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내 주위의 몇몇 청춘들도 입을 귀에 걸고는 청첩장을 건네 온다. 이래저래 주말에는 결혼식에 참석해 그들의 행복을 빌며 손뼉 치고, 식권 한 장 챙겨들고 서둘러 밥 먹고는 폐백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남, 여가 만나 사랑을 하고(사랑 없는 결혼도 있을 테지만),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 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제도인 '결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요모조모 맞는 사람끼리 만나 아껴주며 잘 산다면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제도일지도 모른다.
일단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합법적인 틀 안에서 동거, 성관계, 아이 갖기, 유산상속 등을 '남들 눈치 안보고' 자연스레 해결해가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결혼인데, 많은 여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아름다운 신부 되는 날'인데, 왜 나는 결혼을 바라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한 번, 두 번 결혼식에 다녀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결혼에 대한 반감만 생겨나는 것이다.
주변 어른들은 아직 내가 이십대 초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라 그런 거라며 "때 되면 다 짝 만나서 가게 돼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내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결혼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바로 결혼 '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식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여기서는 '돈' 걱정 한 번 안 해 본 상류층의 결혼식은 제외하고 이야기하기로 한다) 일단, 지나치게 '형식적'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녀들이 놀랍도록 틀에 박힌 결혼식을 한다. 먼저 결혼식장 대여를 해서 '몇 월 몇 일 몇 시'로 식을 정해놓는다. 그 결혼식장에서는 하루에도 수 커플이 식을 올리므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식이 진행되어야 한다.
주례는 주로 덕망 있는 대학교수, 목사, 혹은 사회 유명인사가 맡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의 변주곡 같은 주례사는 참말로 지루하다.
결혼식 주례사에 진심으로 감동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굉장한 집중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어른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동안, 꼬마 하객들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친다.
신랑 신부가 행진을 하는 동안 예식장 측에서는 분주하게 다음 결혼식을 준비한다. 한 지인의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전진하는 속도에 맞춰 예식 도우미들이 뒤따라가며 카펫(신랑 신부들이 가는 길에 깔린)을 걷어내는 풍경을 자아냈다. 그렇게 체할 듯 분주히 움직여가며 치러낸 결혼식이 과연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닐 것인가?
과시의 측면 역시 보인다.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에는 '결혼식 날 신랑 혹은 신부 친구 행세를 해 주면 일당 얼마를 드립니다'하는 글이 간간이 올라온다. 식 이전에 신부 측 부모님은 신랑집에 공들여 준비한 폐물을 보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신랑 측에서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의무다. 돈 없는 사람들은 어디 서러워서 결혼하겠는가?
또한 현재 보편화된 결혼식은 곳곳에 남녀 평등에 어긋나는 요소를 품고 있다. 결혼식 전에 신랑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지만, 신부는 대기실에 고이 앉아 있는 다. 신부 대기실은 있되, 신랑 대기실은 없다는 말이다. 왜 신부는 식전까지 다소곳이 앉아만 있어야 할까?
그리고 신부는 언제나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다른 색 웨딩드레스를 입으려 해도 파는 곳이 없을 뿐더러, 주변에서 뜯어말릴 것이다. 흰색이 순결의 상징이라면, 왜 신부만 순결해야 하는가도 의문이다.
식이 시작되면 신부는 아버지 팔을 붙잡고 들어가 나올 때에는 남편 팔을 붙들고 나온다. '여자는 혼인 전에는 아버지를, 혼인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의 현대판 재현인가?
일각에서는 이러한 관습을 비판하며 신랑신부가 동시 입장을 하는 결혼식을 치르고 있다고 하나, 아직도 많은 결혼식에서 구시대적 풍경을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이 남자에게만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결혼식이 무르익을 때 즈음, 신랑은 만세삼창을 하고 신부는 운다. 어디 팔려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울까? 신부가 활짝 웃었던 필자의 친척언니 결혼식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의 핀잔이 가득하였다. "신부가 왜 저렇게 웃어? 신부가 안 우는 결혼식은 처음이네 그려"하고 말이다.
결혼식 후에 치러지는 폐백 시에도 신랑신부는 신랑 측 부모님에게만 인사를 한다. 폐백 시에도 양 부모님 모두에게 인사하고 덕담을 듣는 식으로 바뀌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렇게 결혼 '식' 뒤에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습과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매스미디어에서는 유명인사인 신부가 어떤 브랜드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느니, 하객으로 누가 왔느니 등의 보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굳어버린 현 결혼식 자체를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