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얼마만큼 알 수 있을까. 첫인상을 통해 받은 이미지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 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첫 만남, 첫인상에서 받은 부정적인 시각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만을 갖고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푸른숲)을 다시 읽는 감회가 새롭다. 얼마 전에 영화로 볼 수 있었는데 다시 책을 접한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는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르의 절제된 연기가 돋보였었다. 여백이 많은 드넓은 초원을 걷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첫 장면에 엘리자베스가 책을 읽으며 초원 위로 걸어가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영화의 절정에서 이른 새벽, 아직 아침 안개가 피어나는 들길을 홀로 걸어가는 엘리자베스, 한참 뒤 아직 들풀들과 들꽃들도 이제 막 눈 뜨는 아침 안개 속으로 엘리자베스를 향해 걸어오는 다르씨의 모습, 이제 막 먼 산 너머 떠오르는 여명 아래 마주 보고 이마를 맞대고 선 두 사람의 모습 등 마음에 담기는 명장면들이 많았다.
다르씨의 내면연기와 무표정한 듯하지만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는 우수어린 눈빛, 두 사람의 절제된 연기가 좋았다. 사랑에 대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았고 또 이번엔 다시 학창시절에 만났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소설을 읽은 것은 꽤나 오래된 듯 하다. 괜시리 바쁜 마음 때문이리라. 오랜 만이다.책은 처음 읽었을 때와 한참 지나 다시 읽을 때, 그 감동은 때로는 낯설고 새롭기까지 하다. 오래 전의 시간들로 거슬러 올라가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 속 인물 ‘메리’의 입을 통해 ‘오만과 편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만은 가장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결함이래. 인간의 본성이 워낙 오만하기 쉽기 때문이지. 실제로 자만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허영과 오만은 종종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뜻은 전혀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 주길 바라는 것과 관계가 있거든.”
여기, '오만 남' 다르와 '편견 녀' 엘리자베스가 만났다. 그들의 만남의 때는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 영국 롱빈 마을이 그 배경이다. 다르는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뿐만 아니라 일 년에 일만 파운드의 수입을 올리는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는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오만함은 소설 곳곳에 나타난다. 처음 무도회장에서 그의 친구가 오만한 모습으로 어느 누구와도 춤추지 않고 서 있는 그를 향해 엘리자베스와 춤을 출 것을 권하자 그가 하는 말은 이렇다.
“뭐,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춤을 추고 싶을 만큼 예쁘지는 않은데, 파트너 없이 앉아 있는 여자를 우쭐하게 해 주고 싶지도 않고.”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할 때도 역시 오만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녀와의 결혼은 엘리자베스의 낮은 신분 때문에 자기의 집안 위신을 떨어뜨린다든가 하는 얘기를 서슴없이 한다.
심한 모욕을 느낀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거절하자 그는 충격을 받는다. 그는 당연히 청혼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남녀가 서로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차츰 변해간다. 사랑의 힘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엮어지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힘겨운 과정을 통해 얻어야만 했다.
오만 남인 다르를 편견의 눈으로 바라 본 엘리자베스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의 오만함 때문에 서로 삐걱거린다. 이백 여 년 전에 쓴 소설이며 영국 중상류층의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지만 사람 살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나보다.
이 소설은 두 남녀, 아니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을 벗겨 가는 과정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서로에 대해 재평가 하면서 사랑을 이루어간다.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인물유형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은 인물이다. 문학 속에는 삶이 있다. 삐걱거리면서도 아름답게 엮어가는 사랑, 바로 이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이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오만과 편견,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오해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삐걱거리면서도 사랑하며 사는 삶이란 아무리 힘들어도 또 얼마나 풍요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