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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장지혜
ⓒ 장지혜
그런데 키위 모양이 좀 이상해요. 촘촘히 박혀있어야 할 까만씨는 듬성듬성 박혀 있었고 짙은 초록색이어야 할 것 같은 키위 속살은 연둣빛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키위 모양이 왜이래요?"
"슈퍼 아저씨가 아주 인기가 좋은 칠레에서 들어온 키위라며 추천해 준건데?"

옆에서 동생은 맛있다며 키위를 먹고 있었습니다. 지난 1998년부터 추진되어 온 한·칠레FTA는 2004년 2월1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같은 해 4월1일부터 발효됐습니다. 그 결과 2006년 현재 동네 슈퍼에까지 칠레산 키위가 들어온 것이지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엄마가 키위를 사왔다던 슈퍼로 가봤습니다. 칠레산 키위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하고요.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슈퍼 한 귀퉁이 과일 좌판에는 칠레산 키위 외에 포도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장지혜
집에 돌아와 다시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키위를 맛있게 먹고 있는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칠레에서 들어온 건데, 우리나라 키위보다 맛이 덜한데?"
"글쎄, 난 칠레산 포도는 맛이 좋은 것 같은데. 이것도 먹을 만 하고."

"그래도 우리나라 과일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게 어딨어. 선택해서 먹고 싶은 과일 먹으면 되는 거지."
동생과의 논쟁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5살의 나이차이가 이런 것에서 느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지난 1일 대학로와 광화문 일대에선 스크린 쿼터 축소안을 반대하는 영화배우와 영화계 종사자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날 시위에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많이 거리로 나서서인지 꽤 많이 보도됐습니다. 시민들의 관심도 그만큼 더해졌고요.

취재진에 둘러싸인 영화배우들의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한국영화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거라는 것을 주장하며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렇게 모였을 것입니다. 혹시, 그런 그들의 심각한 얼굴 속에서 우리 농민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한·칠레FTA 체결 이후 우리 농민들도 그들과 같은 표정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더욱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마음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냥 무심코 진열된 과일 코너에서 칠레산 과일을 사먹었을 뿐이지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스크린 쿼터 문제는 그 덕택에 유난히도 주목 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네요. 분명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면 영화인들의 밥줄이 끊기는 것이나 한·칠레FTA가 체결 이후 들어온 칠레산 과일들 때문에 우리 농민들의 밥줄이 끊기는 것이나 매한가지의 문제인데 말이에요. 너무 무심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글로벌 시대. 모두에게 개방된 그런 지구촌이라는 뜻이지요. 이럴 때 일수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고 월드컵 때 보여준 뜨거운 열정으로 꽁꽁 힘을 합친다면 그 어떤 나라와의 FTA협상이 우리를 위협해도 스스로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따라 유난히도 키위의 맛이 쓴 건 왜일까요?

덧붙이는 글 | 장지혜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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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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