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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희 가정은 2년 동안 아들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서울에 아무런 연고지가 없는 터라 아기를 맡길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2년 동안 처가댁에서 외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민이가 두 돌이 되어 가자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지민이가 더 크면 외할머니와 헤어지기가 힘들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럽게 장모님에게 부탁을 드려 봅니다.

"장모님 이제 지민이 저희가 키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게 아기는 부모하고 자라는 게 제일 좋은 거."
"네, 그동안 잘 키워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장모님에게 조심스럽게 허락을 얻어내고 지민이를 데리고 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민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옷장 등을 준비하고 평판이 좋은 어린이집도 예약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지민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애교 부리고 있는 지민과 필자
ⓒ 전진한
다행히 장모님이 서울에서 보름 정도 있을 수 있다고 하셔서 지민이가 적응하는 데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2년만에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하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4월 말 드디어 지민이가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태어난 지 40일 만에 대구에 내려가서 이제는 걸어서 자기 집에 돌아 온 것입니다.

지민이가 올라만 오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만 살 것 같았습니다. 이런 예상은 처음 2주 동안은 너무나 맞아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지민이가 너무나 잘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머니가 어린이집도 계속 따라 다녔고 매일 따라 다니며 챙겨주었기 때문에 대구생활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외할머니가 2주 동안 계시다가 내려가셨습니다. 2년 동안 홀로 지민이를 봐주셨으니 그 정을 어떻게 뗄까요? 섭섭함에 많이 우시고 대구로 내려가셨습니다. 지민이가 울까봐 자는 동안에 살짝 내려가신 것입니다. 드디어 우리 세 식구만 남았습니다.

첫날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출근시간에 아침 일찍 깨우니 그때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2년 동안 한 번도 타의에 의해서 일어나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할머니를 찾으며 울기만 합니다.

겨우겨우 달래서 밥을 먹이니 밥도 먹지 않습니다. 우유만 조금 먹이고 어린이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갈 동안에도 계속 징징거립니다. 드디어 어린이집에 도착했는데 지민이가 대성통곡을 하고 웁니다. 할머니와 같이 왔을 때는 괜찮은데 그저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 머리띠를 하고 있는 지민
ⓒ 전진한
겨우 떼놓고 나오니 저에게 안기려고 계속 달려듭니다. 이산가족도 이런 이산가족이 없습니다. 저녁에는 아내가 데리러 가니 서러움에 계속 울더랍니다. 이런 생활을 일주일 정도 반복하니 온 가족이 모두 지쳤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부터 지민이의 목소리가 이상합니다.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나더군요.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잤는데 새벽부터 강아지 짖는 듯한 기침소리가 납니다. 열도 펄펄 끓어오릅니다. 열을 재보니 39도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당황해 온 몸을 찬 물로 닦이고 또 닦았습니다. 기침소리는 점점 맹렬해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되니까 지민이가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눈을 뜨자 말자 병원으로 달려가니 인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을 먹고 나니 조금 진정 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은 비슷합니다. 둘 다 직장을 나가야 하니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집에 오니 쉰 목소리로 계속 웁니다. 아픈 아들을 맡기고 오려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병도 낫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심해지는 듯합니다. 대구에 있을 2년 동안은 아픈 적이 거의 없었는데 서울에서는 매일 같이 아픕니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간다고 합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서 준비했는데 지민이가 열이 더욱 많이 납니다. 이틀 전에 병원을 다녀왔는데도 차도가 없습니다.

병원을 데리고 가니 도저히 소풍을 갈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열이 39도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입원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장을 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지민이는 오랜만에 집에서 깊은 잠을 잡니다. 2년 동안 할머니 품안에서만 있다가 어린이집에 가는 게 너무나 피곤했나 봅니다.

저놈의 감기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낫지 않습니다. 무려 두 달 동안 감기를 달고 사는 것입니다. 처음 2주 동안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습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면서 출근하려니 하루 종일 그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2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서로 맞추려고 하니 너무나 힘듭니다. 대구에서는 그렇게 잘 먹던 애가 서울에서는 도통 먹지를 않습니다. 특히 아침은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또한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니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못 알아듣습니다. 그때마다 지민이는 짜증을 내면서 웁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서로를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년 동안 떨어져 살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다행히 두 달이 조금 넘은 요즘은 조금씩 적응하고 있나봅니다. 어린이집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는지 이제는 자기가 먼저 가려고 난리입니다.

이제 할머니를 대신해 엄마와 너무 좋아합니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려 해도 문을 열고 가야 합니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닙니다. 그렇게 안 나을 거 같은 감기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나 봅니다. 가끔 멀리서 지민이를 부르면 날쌔게 달려와서 품안에 꼭 안기는 게 너무나 귀엽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온갖 애교를 다 부립니다. 아내가 지민이의 애교를 어찌나 귀여워하는지 둘째로 낳자고 해서 저를 난감하게 만듭니다. 이제 2년 동안 주지 못했던 사랑을 조금씩 아들에게 줘야 할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민이 소식을 <오마이뉴스> 독자 분들에게 자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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