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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왼쪽)와 딸이 생전 처음 만났다.
조카(왼쪽)와 딸이 생전 처음 만났다. ⓒ 조갑환
북한의 김영남씨가 남쪽의 팔순 노모를 만나 눈물 흘리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핏줄로 이어진 정이라는 게 얼마나 진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야 그런 사람들에게 비할 수는 없지만 7월 3일 저녁에 미국에 사는 동생의 딸을 20년만에 처음 만났다.

미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약학대학에 가게 된 조카가 방학을 이용해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며 친척들을 만나러 온 것이다. 20년만에 처음 조국에 온 조카를 맞이하는 일로 우리 형제들은 모처럼 붐볐다. 서울의 동생은 조카를 맞이하러 인천공항에 나갔고, 광주에 있는 막내 동생은 조카를 맞이하기 위하여 광주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우리 집은 조카를 맞이하는 일로 바빴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아가씨인 조카를 보면서 머릿속이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내 머릿속에는 동생이 젊은 청년으로 남아 있는데 어린아이로 생각된 동생 딸이 웬걸 동화에서 온 것처럼 서구적으로 생긴 아가씨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가족들은 생전 처음 보는 조카가 서먹한가 보다. 내 딸아이도 생전 처음 보는 동생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운 듯싶고,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조카는 우리가 질문을 하면 떠듬떠듬 대답을 하는 청문회가 되어 버렸다.

동생은 20년 전에 한국에 나와서 결혼만 하고 바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제수씨를 본 뒤로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카를 보니 제수씨의 딸이 나타난 것 같지 않고 결혼할 때 보았던 20년 전의 제수씨가 나타난 것만 같다.

사실 조카는 나와 자기 아버지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시키려 온 사신이었다. 조카의 아버지인 내 동생은 80년대 미국에 맨 몸으로 들어가서 2녀 1남을 낳았다. 미국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한국에 나올 틈이 없었다. 90년 중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한국에 한 번 나왔다. 그 당시 아버지는 3년을 중풍으로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동안 아버지 간호에 시달리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일장을 치렀다. 장례 뒤에 도착한 동생은 아버지 묘에만 들렀다가 바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미국 동생을 위해 4일장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면 뭐하냐는 생각에 3일장을 치른 것이다.

그것이 나와 동생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동생은 외국에 사는 형제를 위하여 하루 더 연장할 수 없었냐고 말했고, 나는 형제들이 아버지 간호를 위하여 얼마나 고생했는데 한 번 나와서 아프신 아버지를 보던지 하지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를 보면 무엇 하느냐고 말했다.

그런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서로 연락도 없이 살았다.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은 만나지 못하지만 나와 동생은 얼마든지 연락이 가능하고 만날 수 있는데도 감정의 삼팔선을 긋고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

그렇게 지내다가 지난달 6월에 미국에서 전화가 왔었다. 동생은 딸 빅토리아가 한국에 나온다고 했다.

"형이나 나는 이제 나이 들었으니 우리 시대는 갔어. 우리 2세들의 시대야. 이들이 서로 만나고 좋게 살도록 해주는 게 우리의 의무 아니겠어. 형 이제 묵은 감정은 잊자고. 그리고 형도 미국한 번 들어와!"

동생이 먼저 화해의 손짓을 보내니 내 마음이 참 훈훈해졌다. 그래 동생 말이 맞다. 우리가 지난 전쟁의 감정만을 생각하면서 계속 우리 후손들에게 묵은 삼팔선을 물려주어서야 되겠는가. 묵은 삼팔선의 시대는 갔다. 우리는 삼팔선을 걷어내고 우리 후손들에게 하나된 조국을 남겨주어야 한다.

나와 동생 사이에도 묵은 감정의 삼팔선을 걷어내기로 했다. 이제 우리 애들의 시대에는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가족간의 우애를 나누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게 우리 세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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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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