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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아침처럼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러 가던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 해바라기 꽃이 피었어!"
아이의 외침에 덩달아 반가워 뛰어가니 빈대떡만한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베란다가 다 환하다.
"정말, 꽃이 피었네? 정말 예쁘다!"
"이 해바라기 내가 키운 거야. 그러니 나한테 감사해야지~."
아이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웃음이 번진다.
그랬다. 엊그제 꽃을 피운 해바라기는 딸아이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꽃씨를 심은 것도, 꽃에 물을 주고 정성을 들인 것도, 싹이 올라왔는지 꽃대가 나오는지 살펴보았던 것도 딸아이다.
해바라기씨를 심어 꽃을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딸아이의 해바라기씨 심기는 지난 늦가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햄스터 먹이였던 해바라기씨를 무심결에 빈 화분에 심어본 모양이었다. 보나마나 햄스터용 해바라기씨는 오래 묵힌 수입산일 가능성이 컸고 그마저 우리집에 온 지 한참이 지난 거였으므로 나는 그게 싹이 나오겠느냐며 괜한 수고하지 마라고 말렸던 일이었다.
밖이 추웠던 탓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싹이 나왔고 머잖아 줄기가 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줄기는 너무나 가늘었으며 누런 연둣빛의 잎사귀는 병약하기 짝이 없었다.
추워서 베란다 밖에 둘 수가 없어 베란다 안에 두고 간접 햇살을 쬐도록 했는데 계절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날씨 탓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물주는 일에서부터 용돈을 털어 영양주사액을 주입하는 일까지 정성을 다해 해바라기를 돌보았다.
여린 잎새에 진드기가 생기면 징그럽다면서도 손으로 잡아주기도 했다. 마치 해바라기를 친구로 여기듯 말을 붙이기도 하는 아이의 정성에 시들하던 해바라기에서 꽃대가 올라왔다.
여리고 가는 줄기 끝에 위태롭게 꽃대가 올라온 모양이 안타깝기 그지없어 어느날 밤엔 해바라기 화분을 방안에 들여놓았다. 금방이라도 꽃봉오리를 터트릴 듯한 화분을 추운 베란다에 두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던 모양인지, 따뜻한 거실에서 밤을 보낸 해바라기가 부쩍 힘을 잃었다. 다 엄마 탓이라며 아이는 화분을 다시 제자리인 베란다에 갖다 놓았다. 그렇지만 한번 힘을 잃은 해바라기는 다시 소생할 기미가 없어 보였다.
며칠을 그렇게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해바라기는 허리를 꺾은 채 완전히 시들고 말았다. 봄이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딸아이는 다시 생각난 듯 빈 화분(지난 겨울 해바라기를 심었던)에 해바라기씨를 심었다.
그리곤 학교 실과 시간에 배운 식물기르기의 지식을 총망라하여 해바라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베란다 안에 둔 화분에서 마침내 싹이 나오자 베란다 밖 받침대에 화분을 놓아두고 비를 맞게 하고 자연바람을 쐬게 해주었다. 학교 실과시간에 배운 식물기르기에 대한 지식을 총망라해 해바라기를 기르는 모습이 제법이었다.
점점 따뜻해져가는 날씨에 반응이라도 하듯 해바라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떡잎이 나오고 굵어져가는 줄기에서 어느날 꽃대가 올라왔을 때 아이의 행복해 하는 표정이란…….
햄스터가 먹다 남긴 오래 묵은 해바라기가 정말 그렇게 싹을 틔우고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었다. 그런 탓인지 아이가 키운 해바라기가 한층 더 소중했다.
그 해바라기가 마침내 꽃을 피웠다. 지름 15㎝나 될까한 중간 크기의 화분에서 빈대떡만한 해바라기꽃이 피었다.
엊그제 한송이가 피었고 그 옆에 있는 가지에서도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듯 꽃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있다. 해바라기는 제가 담긴 그릇의 크기는 생각지도 않고 크고 동그란 꽃을 세 송이나 피울 기세다.
그런 탓인지 열매가 여무는 것도 아닌데 줄기가 휘청거리려 한다. 화분에 비해 꽃송이가 큰 탓이다. 나머지 꽃이 피기 전에 지지대를 세우고 줄로 묶어 주어야 할 것 같다.
12층 아파트 우리집 베란다에 해바라기 꽃이 피어났다. 왕창왕창 쏟아지는 비도 양껏 들이키고 뭉텅뭉텅 쏟아지는 햇살도 받아먹으며 오늘도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비와 햇살을 먹고 잘도 자라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느라 아이는 요즘 들어 부쩍 베란다를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