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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위)은 국회에 출석해 "보건복지부 관료들을 기관장추천위에 많이 넣어 복지부 공무원들을 거기로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으나 노동계에서는 정부 산하기관의 자율성 침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위)은 국회에 출석해 "보건복지부 관료들을 기관장추천위에 많이 넣어 복지부 공무원들을 거기로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으나 노동계에서는 정부 산하기관의 자율성 침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B 보험정책팀장 "오늘 (이사회 안건을) 결정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다만 지난번과 똑같은 것으로 결정해서 올리는 것은 여러 가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사회 임원님들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하신 분들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재 이사장 "B 과장님의 판단이, 말씀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이사) 임명을 장관님이 하셨다고 해도 이사회가 장관의 뜻에 따라 의결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은 오히려 장관님께 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6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소재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지하1층 작은식당에서 조찬을 겸해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복지부 B 보험정책팀장이 이성재 건보공단 이사장과 '이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 의결을 둘러싸고 '날선 신경전'을 벌인 대목이다.

복지부 과장 "산하기관 이사회는 임명권자인 장관의 뜻에 따라야"

이날 이사회에는 재적 인원 18명 가운데 17명이 참석했는데 일개 과장인 B 보험정책팀장은 이날 자신의 상급자이자 건보공단 정부측 이사 중의 한 명인 이상용 복지부 보험연금정책본부장(국장급)을 대신해 이사회에 참석해 이같은 위압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B 팀장이 5일 이사회에 대한 임명권이 장관에게 있으므로 장관의 뜻에 따르라는 식으로 강력하게 제동을 걸자 일부 이사들이 복지부 눈치를 보느라 이날 이사회는 정관 일부 변경안을 끝내 의결하지 못한 채 산회했다.

B 보건정책팀장은 나흘 뒤에 다시 열린 임시이사회에 재참석해 자신의 '장관 임용권' 발언을 취소했다.

이와 관련, 농어업인단체 추천 이사인 엄성호 이사(전국농민단체협의회 회장)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농민단체를 이끌면서 수많은 회의를 다녀봤지만 그날 회의에서는 굉장히 모욕감을 느꼈다"면서 "정산법(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취지에 따르면 이사장 선임은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데 복지부 간섭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이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복지부와 건보공단 이사회의 갈등 사례는 '정산법' 시행을 둘러싼 정부(감독관청)과 정부산하기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복지부가 건보공단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청와대에 제출한 '감사 요약보고'(22쪽)에는 건보공단에 통보한 '감사처분사항'(94쪽)에 없는 '이사장 조직관리 및 기강 행태'(4쪽 분량) 부분이 들어가 있어 '표적감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사회에서 정한 정관 임의로 고친 복지부

참여정부는 정부 산하기관의 자율·책임·투명 경영을 도모하고자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제정해 2004년부터 시행해왔다.

'정산법'의 취지는 과거와 같은 '낙하산 인사'를 막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산법은 기관장추천위원회의 구성을 의무화하고 추천위원 선임권을 해당기관 이사회에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정산법 시행 과정에서 부처와 산하기관은 각자 '감독기관의 영향력'과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밥그릇'을 독식하려는 복지부의 갈등 사례가 두드러지게 불거진 것이다.

예를 들어 6월 말로 이성재 이사장의 임기가 끝난 건보공단은 지난 5월초 이사장추천위원회 구성에 관한 정관을 만들어 복지부에 제출했다. 건보공단 이사회가 통과시킨 정관에는 '이사장을 새로 선임할 필요가 있을 때는 지체없이 이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추천위원의 수를 5~15인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여기에 '이사장 추천위원회 총 위원의 과반수는 복지부 장관이 추천하는 자로 한다'는 규정을 새로 넣어 공단에 내려보냈다. 산하기관장 임명에 장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해당기관 내부 정관을 임의로 수정 인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산법의 취지에 반할 뿐 아니라 시행령 내용에 위배되는 것이다. 정산법 시행령은 "이사장추천위 위원 가운데 민간위원을 위원 정수의 과반수로 정하고 추천위 구성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공단의 정관 또는 내부규정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보공단 이사회는 정관 변경안을 원안대로 재의결해 복지부에 보냈고, 이를 '괘씸'하게 여긴 복지부는 인가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위압적인 발언'으로 이사회를 산회시켰다.

<문화일보> 7월 4일자 기사. 기관장 추천을 둘러싼 복지부의 적극 개입에 따른 잡음과 공모절차 지연 등으로 현재 정부산하기관 중에서 유달리 복지부 산하의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만 기관장 선임 지연 및 업무 공백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문화일보> 7월 4일자 기사. 기관장 추천을 둘러싼 복지부의 적극 개입에 따른 잡음과 공모절차 지연 등으로 현재 정부산하기관 중에서 유달리 복지부 산하의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만 기관장 선임 지연 및 업무 공백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사회의 '괘씸죄'

이사장추천위원 과반수를 장관 추천자로 하려는 복지부의 기도는 정산법 취지에 위배된다는 기획예산처의 '유권해석'을 계기로 철회됐다.

하지만 이사장 추천을 둘러싼 복지부의 적극개입에 따른 잡음과 공모절차 지연 및 연장 등으로 현재 정부산하기관 중에서 유달리 복지부 산하의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만 기관장 선임 지연 및 업무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5·31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모 인사의 이사장 내정설이 나오면서 전국사회보험노조 등이 반발해 이사장추천위 회의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이성재 이사장이 퇴임한 이후 지난 3일에야 이사장추천위의 공익위원을 공무원 3명(복지부 2명, 기획예산처 1명)과 경총 대표 1명으로 구성했다. 당초 복지부 안은 '비민간위원 4명 모두 공무원'이었으나 이사회와 노조의 반발로 경총 대표를 1명 넣어 '완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사회보험노조 등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관이 제청한 후보자를 복지부차관과 본부장이 심사하는 것"이라며 "이는 차기 이사장을 사전에 내정하고, 이사장추천위라는 요식절차를 거쳐 공단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음모"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복지부의 산하기관 관리감독에 대한 오랜 관행과 폐습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복수노조'도 한 목소리로 복지부 질타

이에 대해서는 건보공단 이사진과 임직원은 물론 복수노조 사이에도 이견이 없는 듯 하다(지난 2000년에 두 개의 조직이 합병된 건보공단은 한국노총 산하의 건보공단직장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연맹 산하의 전국사회보험노조로 나뉘어 있다).

이와 관련 엄 이사는 "건보공단이 주로 수혜자에게 유리하게 정책을 펼쳐 복지부와 의견 충돌을 빚는 등 복지부와 이사장의 관계가 원만치 않다"면서 "그래서 복지부 관료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사장의 연임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강세환 건보공단 직장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우리는 이사장 연임에 찬성도 반대도 안하지만, 건보공단의 자율권 확보 차원에서 이사회 입장에 찬성하고 부당한 간섭을 하는 복지부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진낙천 전국사회보험노조 정책실장도 "복지부가 이처럼 정산법 파괴행위를 반복한다면 유명무실한 정산법의 폐지를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속 노조가 정부산하기관이 대부분인 공공연맹은 이미 "노동계가 산하기관의 최소한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위해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은 정산법의 기관장추천위원회 구성이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다"면서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 쟁취 등을 위해 공공연맹과 공공기관 관련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총력 확대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처럼 노동계가 복지부 사례에 주목해 정산법 파괴 반대투쟁에 나선 것은 각 부처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산법 취지를 무색케하는 '변칙 낙하산'이 횡횡한 가운데서도 특히 복지부의 산하기관 관리감독을 빙자한 '밥그릇 챙기기' 관행과 폐습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현재 정산법에 따른 '정부산하기관 기관장추천위 구성 현황'을 보면, 11개 산하기관 중에서 문화부 산하의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교육부 산하의 사학연금관리공단만 감독부처 공무원들이 기관장추천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을 뿐, 나머지 9개 기관은 모두 1~4명씩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5월과 올해 5월에 각각 기관장추천위가 구성된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사학연금관리공단의 경우, 기관장추천위 비민간위원에 자체 공무원을 보내지 않는 대신에 체육계와 교총 등 가입자단체 몫으로 돌리고 있다.

정부산하기관 기관장추천위원회 구성 현황

기 관 명

  기관장 임명

  위원 구성

 비고(정부위원)

 국민연금관리공단

복지부장관→대통령

 10(민간 6, 비민간 4)

복지부 공무원 4명   (차관 1, 본부장 3) 

 국민건강보험공단

복지부장관→대통령

 9(민간 5, 비민간 4)

복지부 2명, 예산처 1명(경총 대표 1)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복지부장관

 9(민간 5, 비민간 4)

복지부 공무원 4명    (본부장급 4명) 

 공무원연금관리공단

행자부장관→대통령

 11(민간 6, 비민간 5)

  행자·재경부 공무원      각 1명 등     

 국민체육진흥공단

문화부장관→대통령

 9(민간 5, 비민간 4)

   법조·체육계단체           각 1명 등       

 환경관리공단

환경부장관→대통령

 7(민간 4, 비민간 3)

환경부 공무원 3명

 한국산업안전공단

노동부장관→대통령

 9(민간 7, 비민간 2)

노동부 공무원 1명

 한국산업인력공단

노동부장관→대통령

 7(민간 4, 비민간 3)

노동부 공무원 2명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노동부장관→대통령

 7(민간 4, 비민간 3)

노동부 공무원 2명

 보훈복지의료공단

국가보훈처장→대통령

 7(민간 4, 비민간 3) 

보훈처 공무원 1명

 사학연금관리공단

교육부장관

 7(민간 5, 비민간 2) 

가입자단체 2명

ⓒ 오마이뉴스
복지부의 유별난 '밥그릇 챙기기'

지난해 기관장추천위가 구성된 노동부 산하의 한국산업안전공단의 경우, 처음에는 민간위원 대 비민간위원 몫이 5 대 4였으나 이를 7 대 2로 조정해 민간의 자율성을 높였다. 물론 노동부 공무원 몫도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9일 기관장추천위가 구성된 행자부 산하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경우에도 비민간위원 몫이 5명이지만 행자·재경부 공무원이 각 1명씩이고, 나머지는 전문가 단체(교수) 2명과 가입자단체 1명 등이다.

그런데 복지부 산하기관은 유달리 다른 부처에 비해 정부위원 몫이 클 뿐만 아니라 정부위원 몫마저 전부 복지부 공무원이 독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복지부가 산하기관 비상임이사 몫이라는 '밥그릇'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7월부터 정부 고위공무원단이 출범한 데 따른 인사 적체 해소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경우 기관장추천위원 10명(민간위원 6, 비민간위원 4) 가운데 비민간위원은 전부 복지부 공무원(차관 1명, 본부장 3명)이다. 또 지난 6월 복지부의 '입김'하에 기관장추천위가 구성된 '심평원'의 경우에도 비민간위원 4명이 모두 복지부 공무원이다. 심평원 역시 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잡음이 계속되어 원장 공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런 연유로 지난 6월 26일 현애자 의원(민주노동당)은 국회 보건복지위 회의에서 "최근에 복지부와 건보공단 이사장추천위원회 구성과 관련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고 운을 떼고선 "정관 변경 승인 요청 40일이 지나고 이사회 입장이 전해졌음에도 승인이 지체되어 문제들이 야기되었다"면서 "심평원 원장추천위원 9명 중에서 4명을 복지부 공무원으로 구성한 게 사실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보건복지부 관료들을 추천위에 많이 넣어 복지부 공무원들을 거기로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정부몫 산하기관 자리를 독식해온 복지부 관료들의 오랜 관행에 비추어 장관의 약속이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건보공단 비상임이사이자 근로복지공사의 사외이사로도 참여하고 있는 유재섭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기관장추천위 위원으로 참여해보니 이사라면 혹시 몰라도 감사도 사실상 청와대가 임명하는데 이사장은 오죽하겠냐"고 반문하면서 "현행대로라면 이사장추천위는 일종의 요식절차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처의 감독권과 산하기관의 자율성이 충돌할 때는 정산법 취지를 살려 운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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