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해 더 이상 일본정부에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해 할머니들이 또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4개 단체는 5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며 종군위안부 피해자 109명을 청구인으로 하는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헌법소원심판청구서에서 "외교통상부가 일본과의 마찰을 우려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며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23조)과 행복추구권(10조),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37조 1항)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외교통상부는 지난 4월 10일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 보낸 서면답변을 통해 "우리 정부는 일본정부에 (종군위안부에 대한)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군대 위안부 피해자 보상관련 일본측과의 소모적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93년 도덕적 우위 원칙하 물질적인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 스스로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또 이에 대한 근거로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을 들고 있다. 정부는 "65년 한일협정은 체결 이후 40여년간 양국관계의 기본이 돼왔다"며 "적법하게 체결된 조약에 대해 재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한일관계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최대한 일본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겠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인 셈이다.
피해자들 "나도 조선의 딸이다" 분통
하지만 종군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무사안일주의적인 정부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신해수 정대협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이) 적어도 피해자들이 살아생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국가라면, 또 자국민이 일본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하고 한일조약상의 장애나 불안, 위험으로 인해 지속적인 고통을 받아왔다면 외교와 중재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부 입장을 반박했다.
종군위안부 피해자들도 울분을 토했다. 이옥선(78) 할머니는 "중국에서 강제노동하며 성노예로 힘들게 지내다가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고향에 돌아와 보니 이미 나는 사망신고가 돼 있었고 국적문제 때문에 참 많이 고생했다"고 성토했다.
이용수(78) 할머니도 "나는 조선의 딸로 태어난 죄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열다섯살 외동딸인 나는 자다가 끌려와서 성노예가 되었는데 내 인생과 청춘은 누가 책임져주느냐"며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정부를 비난했다. 이씨는 "우리는 물질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받은 고통에 대한 사과와 적극적인 정부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제출한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오는 12일 오전부터 세종로 외교통상부 건물 앞에서 무기한 '1인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