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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 높이 60m, 폭 3m의 상하 2단식 폭포이다. 나는 아름다운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 높이 60m, 폭 3m의 상하 2단식 폭포이다. 나는 아름다운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 김연옥
아픈 역사를 그대로 감싸 안은 채 묵묵히 서 있는 지리산. 아직도 내겐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큰 산이면서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넓고 포근한 가슴으로 그저 안아 주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여전히 산행이 서투른 내겐 지리산을 찾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처럼 느껴진다.

지난 2일 나는 삼신봉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를 따라 세 번째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그 전날(1일) 호우주의보로 입산이 통제되어 산행이 취소될까봐 은근히 걱정해서 그런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설 때부터 가슴 설렜다.

2일 아침 7시 10분에 마산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9시 30분께 도인촌(道人村) 가까이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청학동매표소(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를 거쳐 산행을 시작했다.

삼신봉(1284m) 가는 길에도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따라다녔다.
삼신봉(1284m) 가는 길에도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따라다녔다. ⓒ 김연옥
그 전날 내린 비로 숲길은 축축했다. 물기 머금은 나뭇잎들은 초록빛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을 정도로 싱그러웠다. 나무들은 굵은 비로 몸살을 앓은 듯 축 처진 채 서 있고, 나직이 엎드려 있는 초록빛 풀잎에 빗방울이 또르르 굴렀다.

삼신봉 가는 길. 초록이 싱그럽다.
삼신봉 가는 길. 초록이 싱그럽다. ⓒ 김연옥
온 숲속에는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로 생기가 넘쳤다. 바위 사이로 신나게 달리는 듯한 우렁찬 물소리에 내 마음도 시원해졌다. 10시 30분께 삼신봉(1284m, 하동군 청암면)에 이르렀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없어 아쉽기만 했다.

청학동 마을에서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 내삼신봉, 외삼신봉이 보인다. 이 가운데 내삼신봉이 가장 높은데, 그보다 낮은 외삼신봉을 삼신봉이라 부르고 있다.

아마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그곳에서 멀리 북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을 따라 가면 세석평전에 이르고 서남쪽으로 가면 아름다운 불일폭포와 쌍계사에 이르기 때문인 것 같다.

안개 낀 내삼신봉(1354m) 정상.
안개 낀 내삼신봉(1354m) 정상. ⓒ 김연옥
내삼신봉(1354m) 정상에 이른 시간이 11시쯤. 역시 짙은 안개에 시야가 가려 버렸다. 촉촉한 안개가 바위와 나무들을 휘감으며 떠돌았다. 더욱더 진한 풀잎 향기에 내 코가 자꾸 벌름거린다. 문득문득 눈부신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투명한 숲길이 그리워졌다.

자리를 잡고 점심을 맛있게 먹은 뒤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를 보기 위해 하산을 서둘렀다. 돌이 많이 깔린 너덜겅을 한참 걸어 내려갈 때는 참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산산이 부서지며 골짜기 아래로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찬 물소리에 힘을 얻었다. 힘찬 소리를 내지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계곡 물에 마음을 뺏긴 나는 몇 번이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그 깨끗한 물에 무거운 발을 담그고 잠시 쉬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다.

ⓒ 김연옥

하산길에 만난 계곡. 지금도 그 우렁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산길에 만난 계곡. 지금도 그 우렁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김연옥

어느새 불일폭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쌍계사(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불일폭포는 높이가 60m, 폭이 3m로 위아래 2단식으로 되어 있다.

마치 하늘에 고여 있던 물이 한데 모여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불일폭포. 예전에는 가까이 접근해서 그 웅장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다. 지금은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 안타깝게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불일폭포. 참으로 아름답다.
불일폭포. 참으로 아름답다. ⓒ 김연옥

가까이 가서 그 웅장함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가까이 가서 그 웅장함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 김연옥

폭포에 나를 던집니다 / 내가 물방울이 되어 부서집니다 / 폭포에 나를 던집니다 / 갑자기 물소리가 그치고 / 무지개가 어립니다 / 무지개 위에 / 소년부처님 홀로 앉아 / 웃으십니다 (정호승의 '불일폭포')

나를 던지고 싶었던 불일폭포.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쌍계사로 내려가야 했다. 아쉬움에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뿌렸다. 이따금 나는 비 내리는 날, 또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절에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날 비 내리는 쌍계사에 내가 있었다.

쌍계사 대웅전 보수공사로 바로 그 앞에 임시  대웅전이 마련되어 있다.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도  볼 수 있다.
쌍계사 대웅전 보수공사로 바로 그 앞에 임시 대웅전이 마련되어 있다.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도 볼 수 있다. ⓒ 김연옥

대웅전(보물 제500호) 보수공사로 임시 대웅전이 만들어져 운치가 없어 아쉬웠다. 신라 말 고승인 진감선사 혜소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인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찬찬히 보았다. 고운 최치원이 그 비문을 지어 썼다고 한다.

쌍계사 가는 길.
쌍계사 가는 길. ⓒ 김연옥

비는 금세 그쳤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엔 눈부신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름다운 불일폭포가 내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산행 코스는 지리산국립공원 청학동매표소→삼신봉→내삼신봉→불일폭포→쌍계사→지리산국립공원 쌍계사매표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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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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