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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세요'로 불리는 24시 심부름 서비스는 한밤중에도 뭐든지 배달해주면서 싱글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해 주세요'로 불리는 24시 심부름 서비스는 한밤중에도 뭐든지 배달해주면서 싱글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 우먼타임스 노민규 기자
[권미선 기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민정연(34·가명)씨는 그래픽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싱글 여성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새벽 2시. 허기가 져 냉장고를 열었으나 먹을 것이라곤 달걀 두 개가 달랑 남아 있을 뿐이다.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난 지 이미 오래다.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을 살 만한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게다가 몸은 손도 까딱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하다.

이때 민씨가 떠올린 것이 일명 '해 주세요'라는 심부름 서비스 업체. 햄버거, 오렌지 주스, 세제, 형광등, 스타킹 등 필요한 물건을 사다 달라고 주문했다. 새벽 2시에 주문했음에도 정확히 30여 분 후,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배달원이 주문한 물건을 들고 나타났다. 배달원은 친절하게 형광등까지 갈아준 뒤 심부름값 8천원을 받고 돌아간다.

장보기 대행부터 애완동물 찾아오기까지... 싱글족 사이에서 인기

서울 강남 일대 싱글족들에게 일명 '해 주세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서비스의 강점은 '뭐든지 다 사다주는 24시간 서비스'라는 것. 손도 까딱하기 싫은 '귀차니스트'들에게는 그야말로 "땡큐"를 연발하게 할 정도다.

맥도널드 햄버거, 스타벅스 커피, 생선회, 감기약, 쓰레기통, 속옷 등 가게에서 파는 모든 물건을 일정한 심부름값을 받고 사다준다. 병원에 맡겨둔 애완동물을 찾아오거나 각종 민원서류 발급도 대행해준다. 못질, 전구 교체 등 평상시 하기 싫어 미뤄둔 귀찮은 일들을 대신해주기도 준다.

배달 서비스 비용은 4400원부터 시작된다. 물품을 한 곳에서 구입하면 심부름값으로 4천원대를 받지만, 장소를 옮겨 다른 곳에서 구입해야 할 경우엔 구입할 때마다 3천원의 추가비용을 받는다. 퀵서비스 요금이 보통 1만원대인 것을 감안한다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서 배달까지 해주는 이 서비스는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는 것이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프리랜서 음악디렉터인 양모씨는 이 심부름 서비스를 아주 유용하게 이용한다. "무거운 물건을 살 경우 마트에 차를 몰고 다녀오려면 시간과 기름 값이 든다. 그에 비하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이 된다." 양씨는 2주에 한 번 심부름 서비스 업체의 '장보기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필요한 물건을 다 사고 약 8천원의 비용을 지불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주문자가 요구하는 상품을 뭐든지 배달해주는 이러한 서비스 업체는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개인의 신원조사를 주로 담당하며 '흥신소'로 불렸던 심부름 회사가 이제 '심부름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생활 깊숙이 들어온 것.

업체가 점차 늘어나면서 차별화 전략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올해 초 문을 연 뒤 강남 싱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S심부름 서비스 업체는 '아메리칸 스타일 맞춤형 심부름 서비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브랜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쿠폰을 만들고 '전해주세요', '사다주세요', '맡겨주세요'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 맞춤형 심부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 오픈한 Y심부름 서비스 업체도 직원들이 노란 유니폼을 착용하며 서비스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이들은 고객을 특별회원, 일반회원 등으로 등급을 나눠 관리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3500원짜리 햄버거위해 4900원의 심부름 비용 지불

이렇게 배달 업체가 늘어난 데에는 근무시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분석이다.

심부름 서비스 회사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보통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한다. 한밤중에 장을 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문을 연 가게도 찾기 힘들어 돈을 더 주더라도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

박씨는 주문한 물건을 보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진짜 이유가 그야말로 '귀찮아서'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박씨는 "심부름 서비스 회사를 창업한 지 3개월 됐는데 하루에 1백 건 이상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며 주문 품목 중 가장 많은 게 햄버거라고 말한다. 배는 고프고 나가기는 귀찮은 사람들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햄버거 가게의 3500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4900원의 심부름 비용을 지불하고 사먹는 것이다. 박씨는 "귀차니스트들을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귀차니스트들이 많은지 몰랐다"고 귀띔한다.

일각에선 이 서비스를 남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배달을 주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야말로 푼돈에 개념이 없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고 말한다. 배달을 요청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이고 부유한 싱글 여성이나 전문직 종사자들도 많다는 것.

이들은 치약이나 감기약 등 집 앞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까지 배달 서비스를 이용한다. 3년째 논현동에서 배달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송모씨는 "주문하는 물건 중에는 배달비보다 더 싼 담배, 일회용 밴드, 소화제도 있다"며 "일거리가 많아서 좋긴 하지만 너무 개념 없이 돈을 쓰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은 "귀차니스트를 타깃으로 한 제품을 넘어 이젠 그러한 서비스까지 넘쳐나고 있다"면서 "과거 어두운(?) 일을 주로 했던 심부름센터가 귀차니스트와 소비욕이 높은 싱글족을 타깃으로 한 이색 사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3500원짜리 햄버거를 먹기 위해 8000원을 기꺼이 내기도 하고, 시간을 절약하려고 배달을 주문하는 곳. '배달공화국' 강남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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