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고진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수탉>(민음사·2005)을 읽었다. 강원도 강릉 등지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온 고진하 시인은 현재 목회 활동을 잠시 쉬면서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가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는 <수탉>외에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 배꼽>, <얼음수도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부드러움의 힘>이 있다.
목사 시인 고진하의 시적 사유는 특정 종교관에 얽매여 있지 않다. 시집 <수탉>은 배타적이지 않고 열려 있는 시각으로 뭇 생명과의 교감을 통해 발견한 신성(神性)을 고요한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그 목소리는 가령 이러하다.
새소리는 재잘재잘 들리는데
새들은 보이지 않는구나
마른 잎새들 간신히 매달고 있는 가시덤불
주자(奏者)의 얼굴은 감추고 생음악만 내보내는 가시덤불
가까이 다가서니 생음악은 뚝 그치고
귀가 민망해 돌아서니 다시 연주를 내보내는 가시덤불
홀로 걷는 방죽 아래 강물은 꽝꽝 얼어붙고
투명한 얼음 속,
지느러미조차 멈춘 고요의 어미들은
푸른 쉼표 하나씩 긋고 둥둥 떠 있는데
너의 바탕도
노래, 고요의 어미의 아들이라고
너와 나는 한통속이라고 속삭이는 가시덤불
은밀한 자아 쓱쓱 지워버리고
생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가시덤불
오 부드러운 소리의 둥지,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침묵의 가시로 무장한 가시덤불
오직, 경청(傾聽)만 허용하는 가시덤불!
(시 '노래하는 가시덤불' 전문)
위 시에서 시인은 보잘것없는 가시덤불을 통해서 온 우주와 만물의 근본인 ‘고요’를 노래하고 있다. “은밀한 자아 쓱쓱 지워버리고/ 생음악을 연주”하려 한다. 우주의 근본과 진리의 길로 애써 걸어가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인의 길이요, 목회자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에 낮고 작은 생명들에게서 두루 신성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시단의 존경하는 한 선배 시인으로부터 시목(詩牧)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고진하 시인의 시 세계를 잘 업고 있는 참 적당한 이름인 것 같다.
시집 <수탉>에서 고진하 시인은 여행가방 속 부패한 귤에서 솟아난 하루살이의 날갯짓에서, 불타버린 낙산사 재의 사원(寺院)에서, 투계(鬪鷄)의 황홀한 충돌 뒤에서, “말좆 같은 긴 꽃대를 하늘로 쑥 뽑아 올린 무주란”에서, 폭우 내린 다음날 여울목의 소용돌이 춤에서, 북인도의 시골 역 부근 보리수나무 아래 엉덩이 내놓고 똥 누는 아이에게서, 흙 마당에 “퉁퉁 불은 젖이 달린 배를 깔고 납죽 엎디어 있”는 흰둥이에서, “움, 메에에에”우는 흑염소의 울음소리에서, “꽃 속의 꿀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 직박구리에서, “뿔더듬이를 허공에 쳐들고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는” 달팽이에서, 누가 공터에 내다버린 낡은 가죽소파 위에 꽃핀 민들레에서, “늙은 어미의 자궁이 부욱, 찢어지며” 폭발하는 봉숭아 씨앗 등에서 생명의 본 모습 즉 신성(神性)을 발견하고 시로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시를 기르고 있다.
시집 <수탉>에 등장하는 시인은 인도 힌두교 사원으로, 불타버린 낙산사로, 봄빛의 악양 들판으로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시집 <수탉>은 고진하 시인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깨달은 생명의 참 모습을 기록한, 순례자의 내밀한 기록물이다.
구름패랭이는
꽃 이름 같지 않다
구름패랭이는
구름이 쓴 모자 이름만 같다
붐비는 저잣거리에선
모자를 서로 빼앗아 쓰려고 저 안달들이지만
구름패랭이 같은 멋진 모자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구름패랭이는
정처 없이 방랑하는
늙은 탁발승의 이름 같다
흘러가는 구름에 본적(本籍)을 두고
본적을 두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난 샛길로
광대버섯 같은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떠도는!
(시 '구름패랭이' 전문)
흘러가는 구름에다 본적을 두고 멋진 구름패랭이 모자 푹 눌러쓰고는 정처 없이 방랑하는 늙은 탁발승의 모습, 이 모습이 바로 시인 고진하의 참 모습은 아닐까 싶다. 나도 저 구름패랭이 모자를 쓰고 정처 없이 방랑의 길을 가고 싶다. 아직은 구름도 패랭이도 보이지 않는다. 공부 한참 더 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