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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져온 10페이지 짜리 밴드 패킷
학교에서 가져온 10페이지 짜리 밴드 패킷 ⓒ 한나영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착오였다. 사실 '쿠키 펀드레이징'은 비싼 유니폼과 밴드 활동에 필요한 부대 비용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큰 몫을 차지했던 유니폼 값을 개인이 부담하는 게 아니라고?

눈먼돈 45만원이 졸지에 호주머니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제 딸아이가 부담해야 할 돈은 처음 생각했던 575달러에서 4분의1도 안 되는 125달러였다. 대폭 줄어든 부담금 덕분에 딸아이의 무거운 어깨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장학금으로 받았던 돈도 100달러나 있었기에 나머지 25달러만 채우면 되는 일은 대단히 쉬운 일로 보였다. 그러면 이제 딸아이는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이 원했던 밴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목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 혹은 도달하고자 하는 곳으로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목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동인(動因)이 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동인이 되었던 자신의 목표가 사라지게 되면 사람들은 의욕을 잃기도 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걸음을 중단하기도 한다.

딸아이도 그랬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엄청난 모금액 앞에서 고민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몫이 대폭 줄어들게 되자, 아이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의욕을 보이던 아이였는데….

사실 딸아이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왜냐고? 말이 쉬워서 그렇지 '날마다' 학교에 갔다 와서 쿠키를 굽고 포장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수고한 대로 1달러짜리 쿠키는 그런 대로 팔려 돈은 제법 모이고 있었다.

첫째날 7달러, 둘째날 10달러, 셋째날 4달러, 그리고 시험이 있던 넷째날과 다섯째날은 쉬었고, 여섯째날에는 3달러가 모였다. 목표액 25달러에 육박한 돈은 '굿뉴스'와 더불어 딸의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결국 딸아이의 쿠키 펀드레이징은 27달러의 수입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물론 자신의 밴드 활동비는 그 동안 저축해둔 용돈과 이번 펀드레이징으로 모은 돈으로 혼자 해결했다. 딸의 거창한 프로젝트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실천되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딸에게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

첫째,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활동을 하려고 할 때 무조건 손을 내밀지 않는다. 즉,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긴다. 딸아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체득하게 된 것 같다.

둘째, 가장 큰 소득이라고 여기는 점인데, 평소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자신의 목표 앞에서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딸아이는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계획을 당당하게 설명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셋째,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깨달은 점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눈먼돈이나 땀을 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으로 사는 인생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삶 대신 딸아이는 직접 자신이 땀을 흘려봄으로써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딸아이는 첫째날과 둘째날은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흥분으로 열심히 쿠키를 굽고 포장을 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자 힘들어하고 지루해 했다. 그런 가운데 딸아이는 인내를 배우고, 미래의 직업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통하여 딸아이는 부쩍 성장한 것 같다.

주유소에서 세차 펀드레이징을 하는 청소년들.
주유소에서 세차 펀드레이징을 하는 청소년들. ⓒ 한나영
그런데 이런 펀드레이징은 미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번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갈 때였다. 길 건너편에서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깃발을 흔들며 오가는 차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뭔가 해서 카메라를 꺼내고 보니 이들은 주유소 안에서 '세차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서는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아이들, 어른들도 펀드레이징을 한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기금을 모으는 것 외에 학교나 교회, 혹은 기관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펀드레이징을 한다. 그러면서 사회를 경험하게 되고 공익을 위한 일에 적극 참여하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들의 펀드레이징에 기꺼이 동참하여 돈을 낸다.

지난 4일은 미국의 공휴일인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이었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는 '불꽃놀이'를 포함한 다양한 행사가 많이 열렸는데, 내가 살고 있는 해리슨버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날 밤, 하늘에 수놓아진 아름다운 불꽃을 배경으로 미국의 전통적인 컨츄리음악을 감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펀드레이징은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성조기 무늬의 모자 모금함을 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콘서트 주변을 헤집고(?) 다니며 기금을 모으고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목적으로 펀드레이징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지금 당신이 즐기고 있는 콘서트는 무료입니다. 해마다 독립기념일이 되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음악을 즐기고 분위기를 즐깁니다. 이 행사는 내년에도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내년 행사를 위해서 지금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 '독립기념일' 행사를 위해 펀드레이징을 하는 사람들.
내년 '독립기념일' 행사를 위해 펀드레이징을 하는 사람들. ⓒ 한나영
모금함 속을 들여다보니 1달러, 5달러, 10달러짜리가 그득했다. 미국에 와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어느 특정인만이 펀드레이징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십시일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펀드레이징에 참여하고 있으며, 기부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사실이다.

딸아이의 이번 쿠키 펀드레이징은 사실은 학교 밴드활동 때문에 시작된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으로만 끝난 일은 아니었다. 수입 이상으로 큰 소득이 있었던, 아니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준 귀한 프로젝트였다.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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