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고, 이에 대해 한국·미국·일본 등 관련국들이 강경 대응을 취할 조짐을 보이면서 한반도 정세가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다. 우선 북한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을 압박해 직접 담판을 노린 '외교적 카드'이든,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군사적 억제력'이든, 그것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미일 양국의 강경파 입지를 강화시키는 현명치 못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부시행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데에는 부시행정부의 책임도 크다. 부시행정부는 2001년 1월 취임 직후, 클린턴행정부 때 협상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사일 협상을 중단시키고 말았다.
표면적으로는 대북정책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내심으로는 절대안보를 향한 미국 매파들의 열망과 군산복합체의 막대한 이윤이 함께 녹아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명분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또한 9·11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오히려 9·11 테러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반테러 국제협약에 가입하는 등 성의를 표시한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2년 10월에는 이렇다할 근거 없이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제네바합의 파기를 선언했고, 이후에는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고수했다.
또한 작년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경수로 제공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밝히고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및 유통 혐의를 근거로 금융제제를 부과했다. 아울러 대북 선제공격 전략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안팎에 군사력을 증강시켜오고 있다. 특히 지난달부터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라는 합동해상훈련을 실시하면서 북한에 대한 무력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는 수시로 양자회담을 하면서 핵심적인 당사자인 북한과는 직접대화를 거부해, 도대체 문제해결의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오고 있다.
물론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잘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기실 북한 미사일문제는 핵문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북 강경책과 북한의 잘못된 대응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군사적으로 대치해 있는 한미일 3국을 상대로 군사적 억제력을 갖겠다는 것은 북미·북일관계 정상화라는 북한의 외교적 목표를 멀리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국 주도의 비군사적인 위협에 더욱 취약해지고 국제적 고립과 군비경쟁에 휘말려 안으로부터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소련이 핵무기와 미사일이 부족해서 망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북한 지도부는 깨달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부시행정부가 계속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관심 끌기'로 규정하고, '외교 없는 외교적 해결'만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화로 임하는 것은 벼랑끝 전술에 넘어가는 것이고, 과잉 대응을 하면 북한의 관심 끌기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며,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데 몰두하고 있다.
왜 북한과의 대화만 안 되는가?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 부시행정부의 중대한 오판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의 일관된 입장은 협상을 통해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미국이 적대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억제력을 갖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동시다발적인 미사일 발사는 단순히 '외교적인 카드'라는 의미를 넘어 '군사적 억제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핵 능력을 차곡차곡 늘려나가면서 그 운반체까지 확보하면 대내적으로는 강성대국 이미지를, 대외적으로는 고슴도치 전략을 과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부시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하는 사이에 북한은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축적했고, 탄도미사일의 성능도 꾸준히 향상시켜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깡패국가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던 부시행정부는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을 바라보면서 2009년 1월 퇴임을 맞이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오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있다. 2001년 1월 취임할 때,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외교'를 꺼내들어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에 나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외교의 출발점이자, 고사상태에 있는 6자회담을 되살리는 길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제외한 모든 6자회담 참가국들과 양자회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핵심적인 당사자인 북한과의 대화는 거부하고 있다. 북미 직접대화의 산물인 '제네바 합의'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이유 때문이다.
누가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이 큰 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는 결국 부시행정부가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미 직접 대화는 6자회담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적인 당사자들이 서로의 진의와 우려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때, 6자회담도 다시 열릴 수 있고 성과도 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미 직접대화는 6자회담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이다.
부시여! 레이건에게서 배워라
부시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레이건 대통령은 한때 '악의 제국'으로 규정했던 소련과의 직접 대화에 응해, 미소간의 냉전 해체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는 인류사회를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진정 부시행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못할 이유는 없다. 부시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응하고 6자회담의 재개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냉전구조 해체의 길로 나서는 것이야말로, 60년 전 미국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한반도를 분단시킨 역사적 과오를 치유하는 길이자, 미국과 국제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스타워즈'(전략방위구상의 별칭이자 레이건식 MD를 뜻함)의 꿈을 좇았다가 1000억 달러라는 소중한 예산을 낭비하고서야 외교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레이건처럼, 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부시가 20년 전의 교훈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