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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을 앞두고 여느 자식들처럼 고민에 빠졌다. 매년 부모님은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내게 쓸데없이 뭐 살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셨지만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자식 마음 아닌가. 그래서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땐 카네이션과 속옷, 넉넉하지 못할 땐 카네이션만 달랑 사드리곤 했는데 이젠 레퍼토리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생각난 것이 얼마 전 부모님의 대화였다.

"이번 월드컵엔 우리도 붉은악마 티 사야지?"
"며칠 전에 마트에서 보니까 9천원에 팔던데…."

그렇게 어버이날 선물을 결정하고 붉은악마 티셔츠를 사고자 냉큼 상경 길에 올랐다. 부모님에게 사드리는 것이니 만큼 마트에서 파는 9천 원짜리 티셔츠보단 우리 동네에는 없는 모의류사의 티셔츠를 사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이즈에 맞는 것으로 고르고 '내 것도 사야 하는 건가'하는 고민에 잠시 망설였다. 도통 단체복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2002년에 그랬듯 이번 월드컵에도 붉은악마티를 입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엔 아버지, 어머니가 입고 계실 것이 아닌가. 두 분이 나란히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니 도무지 나만 빠질 수 없었다. 결국 내 것까지 세 장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세 장의 티셔츠 꺼내놓았고 부모님의 반응을 상상했다. 그런데 웬걸 지금껏 보지 못한 부모님의 반응이 이어졌다.

"야, 안 그래도 올해는 꼭 한 장 얻어 입어야지 했는데."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예쁘긴 예쁘네."

월드컵에 우리 가족의 추억을 담기로 결심

▲ 맨 위부터 어머니, 아버지, 내 티셔츠인데 어머니의 것이 제일 큰사이즈다.
ⓒ 이덕원
그렇게 월드컵을 즐길 준비를 마치니, 어느덧 월드컵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국의 경기는 최소 세 번. 마냥 설레기만 해야 할 때인데 나는 그 세 경기를 누구와 볼 것인가 하는 다소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다.

광화문에서 함께 거리응원하자는 여자친구, 찜질방에 모여서 응원하자는 고교동창들, 자취방에서 족발에 소주 한잔 걸치며 응원하자는 대학동기들.

하지만 작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집에서 단출하게 보실 부모님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간접프리킥이 뭐고 직접프리킥이 뭔지, 페널티킥은 뭐고 오프사이드는 뭔지 가르쳐주신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무심하게 주무시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아버지는 홀로 축구경기를 시청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가족과 함께 월드컵을 즐기기로 했다. 사실은 부모님과 함께 봐야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만큼 나와 축구경기를 보는 시각이 비슷한 친구도 없고, 어머니만큼 현장감 넘치게 소리 지르며 보는 여자친구도 없으니.

월드컵의 막이 오르고 한국의 토고전, 프랑스전, 스위스전이 이어졌다. 응원을 하며 먹을 간식으로 준비한 족발은 뒤로 한 채 노심초사 경기를 보던 토고전, 그 어느 때보다 어머니가 현장감 넘치게 환호한 프랑스전, 경기가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심판의 편파판정에 대한 울분을 삼키지 못한 채 술만 마신 스위스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불행히도 한국의 경기는 최소한으로 주어진 세 번에 그쳤다. 그리고 나는 토너먼트부터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없었다. 물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 월드컵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모회사 인턴생활을 위해 상경해 일과에 바쁘다보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토너먼트 경기를 놓치고 있던 차, 집으로 내려간 나는 그동안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을 아버지에게 각 경기의 내용을 물었다.

"네 엄마한테 물어봐, 아주 월드컵 박사가 다 됐어."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거봐, 내가 프랑스가 잘 할 거라고 그랬지? 포르투갈에 걔는 보면 볼수록 잘 생겼더라. 참, 루니 걔는 애가 정말 못 됐더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만 간간히 관심 있는 경기를 골라 보고, 어머니는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했으니 관심 밖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는 월드컵 박사가 다 된 듯 경기내용부터 선수까지 줄줄이 외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월드컵을 보내며

▲ 알람에 일어났더라면 처음부터 함께 봤을 텐데 못내 아쉽다.
ⓒ 이덕원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던 오늘(10일) 새벽, 이번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자 알람을 맞추고 잔 나는 정신없이 자다가 경기가 끝나갈 즈음에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방문 사이로 들어온 한줄기 빛을 보고 나간 거실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어머니가 경기를 보고 계신 게 아닌가. 그런데 이어진 어머니의 말이 더욱 놀라웠다.

"오늘 지단 컨디션이 별루네, 경기는 프랑스가 더 잘했어."

어머니는 경기를 처음부터 쭉 보고 계셨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지단'이 홧김에 상대 선수를 머리로 들이받고 퇴장 당하자, 이에 어머니와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또 이 때문에 아버지도 잠에서 깨 경기 시청에 합류하셨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1대 1의 공방 끝에 연장전에 접어들었지만, 연장을 통해서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결국, 내가 아침 첫 차를 타고 상경해야 하는 탓에 아버지와 난 승부차기를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터미널로 가는 길, 라디오를 통해 들은 승부차기의 결과는 5대 3으로 이탈리아의 우승이었다. 아마도 홀로 집에서 승부차기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늘상 잘 생겼다던 프랑스 선수 '트레제게'의 실축에 안타까워 하셨을 것 같다.

2006독일월드컵, 훗날 돌이켜보면 이러한 우리 가족의 추억이 알알이 담겨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덕원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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