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로 국적은 한국으로 되어있으나 현재는 일본문단의 에세이스트, 현대법학부 교수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 이외에 소년의 눈물,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등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적 경향과 재일조선인 차별 등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형인 서승, 서준식씨는 간첩사건에 연류되어 한국에서 오랫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고 현재는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디아스포라는 원래 고유명사(Diaspora)로 표기하면 세계를 떠돌던 유태인 민족을 일컫는다고 한다. 그것이 보통명사(diaspora)화 되어 "이산(離散)의 백성"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그에게는 그러한 여러 사람들 즉, 재일조선인, 입양아, 유태인, 아프리칸, 팔레스타인인 등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그의 런던, 광주, 카셀, 브뤼셀, 파리 등을 여행하며 미술전시회, 음악회 등을 본 감상과 자신의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체성 확인을 오버랩 시키며 글을 써내려 간다. 거기서 돋보이는 것은 그의 뛰어난 글솜씨와 탁월한 소재발굴 능력이다.
서경식은 자신의 조국(할아버지의 나라)인 조선과 자신의 모국(태어난 나라)인 일본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서 큰 혼돈을 겪은 유년기를 보낸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재일교포들이 그런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재일조선인 1세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은 일본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국적을 두지 않는 사실상의 무국적자인 조선인의 위치를 스스로 택하여 살다가 사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난민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서경식은 이스라엘과 유태민족에 관한 기록도 하고 있다.
최근의 이스라엘이 공격적 시오니즘으로 변질되어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자신의 민족이 당했던 이상의 핍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디아스포라였던 유태민족은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디아스포라가 될 위기로 내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책의 후반부에 나온 유태인 디아스포라들이 2차대전 시기에 나치에게 당한 고난도 별로 동정이 가지 않았다. 단지 이 지구상에는 많은 디아스포라가 있고 있어왔고 그렇지 않은 내 처지가 퍽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민족주의가 해체의 대상으로, 국가주의는 파시즘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최소한의 국적조차도 없는 디아스포라들에게는 조국이나 모국어라는 것은 몹시 외경시되는 것인가 보다.
<디아스포라 기행>에는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현재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인종적, 민족적 분규의 원죄라는 평가를 받는 대영제국을 비롯해 유럽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갈갈이 찢겨진 아프리칸 대륙과 다른 대륙으로 납치되어 와서 디아스포라의 신세가 된 아프리칸들이다.
서경식은 이들의 이야기와 다른 여러 종류의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를 뛰어난 미술작품들을 소재로 하여 써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 내용 못지 않게 첨부된 미술작품들과 그 해설들도 읽을 만하다.
<디아스포라 기행>을 만족스럽게 읽은 독자라면 그의 다른 책들도 권하고 싶다. 그의 유년기시절과 독서편력을 잘 그려낸 <소년의 눈물>에서는 어떻게 디아스포라적인 관점과 세계관이 그에게 자리잡는지 잘 드러나 있고,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그의 디아스포라적 세계관으로 들여다본 서양미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