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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는 아니지만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을 한다. 보통은 산길로 가는데 오늘은 태풍 뒤의 개울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파서 개울 길을 선택했다. 중간쯤 왔을까, 갑자기 눈이 부셨다. 활짝 터뜨린 부채꼴 모양의 솜사탕 꽃 때문이었다.
자귀나무 꽃은 늘 하늘을 바라보고 핀다. 꽃 중에 이런 꽃들이 몇 있다. 그러나 2∼3m가 넘는 나무에서 잎을 아래로 두고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 꽃은 거의 없다. 마치 잎이 초록색 담요라면 그 위에 피어난 꽃은 분홍빛 구름이다.
게다가 멀리서 볼라치면 자귀나무 꽃은 꽃으로 보이지 않고 마치 그 위에서 분홍빛 나비가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특히 바람이 불 때면 더욱 그러하다. 꽃으로 있을 땐 정물화에 그치지만 바람에 흔들리면 약동하는 존재가 된다. 그 모습의 황홀함은 보고 느낀 이에게만 다가올 뿐.
자귀나무는 그 잎을 소가 잘 먹는다고 하여 소쌀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달내 마을에서도 혹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느냐고 물으니 산음댁 할아버지께서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소쌀나무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인 것 같다.
자귀나무가 많은 이의 관심을 끄는 건 잠자는 모습 때문이리라. 아카시아나 버드나무 잎처럼 보이는 40여 개 가량의 잎이 밤이 되면 마주보는 잎들끼리 꼭 달라붙는다. 어느 한 잎도 빠짐없이 자기 짝을 찾아 꼭 껴안은 모습이다.
이 모습에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있으랴. 애정목(愛情木),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합혼수(合婚樹) 등으로 불리는데 우리 말로는 사랑나무가 적당하리라. 이처럼 자귀나무는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간혹 상징이 상징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화되기도 한다. 이 나무를 정원수로 심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이들에 의해 꽃을 말리거나 나뭇가지를 잘게 썰어 베개 속에 넣어두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진다 하여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자귀나무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그러니 꽃 피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허나 그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걸 찾으려고 하는 이들에게만 보여준다. 꽃에도 아름다움이 있지만 그 잎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