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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책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 종이심장
'남아프리카 공화국'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라는 희망봉,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 케이프 타운이라는 도시, 우리나라에서 매우 먼 곳. 이 정도로만 알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자세히 소개하는 책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다.

제목부터 독특한 이 책은 소개하는 지역이 매우 특이해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장을 넘기면 첫 장부터 아주 독특한 그림과 함께 저자의 자기소개가 담겨 있다. '그냥, 에세이스트'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한 점과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향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게로 떠나는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마음을 끈다.

항상 떠남을 꿈꾸는 여행가인 저자가 케이프타운에 머무르면서 느낀 감상과 사진, 추억들을 잘 버무려 만든 이 책은 읽다 보면 이곳을 꼭 한 번은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저자의 문체가 케이프타운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케이프타운의 곳곳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책 속에 살아 있다.

"순조로운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이게 아닌데, 식으로 영문 모를 우울 증세에 시달리는 일이 생깁니다. 순조로운 일상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순조롭다는 것, 안정적이라는 것, 그것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다른 방식의 불행입니다. 순조로운 일상이 당신의 고개를 들게 하고 하늘을 보게 하고 여행을 떠나게 하는 일은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순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문득 떠난 곳, 케이프타운. 이곳은 자연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곳이다. 인종 차별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안전하고 평화롭다. 그래서 저자는 이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지중해성 기후와 바다와 산, 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곳에서는 바다 바람을 맞으면서 일상에서 얻은 피로와 어지러움을 씻어 내릴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묵직한 바위산을 오르면서 자연과 소통하는 곳. 우리나라처럼 험하고 복잡한 사회에 익숙한 이들은 한 번쯤은 이렇게 한적한 장소를 방문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프타운은 먹을거리, 볼거리, 생각할 거리가 모두 풍부한 곳이어서 여행하는 내내 즐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브라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식의 요리, 사자나 레오파드 같은 야생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통나무집 롯지,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번지점프 다리 등 책 속은 흥미진진한 것들로 가득하다.

"케이프타운 남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당신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대답할 것입니다. 밖에서는 나름대로 직업이 있지만 가정에서의 내 직업은 요리사입니다. 물론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오직 브라이 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케이프타운에서 브라이는 남자들의 요리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세 시간 전부터 불을 피우며 애틋한 사랑을 과시할 수 있는 그야말로 남자들을 위한 요리인 것입니다."

우리처럼 숯불 요리 식당에서 허겁지겁 씹어대는 삼겹살이 아닌 직접 세 시간이나 불을 지피며 느긋하게 구운 요리들은 얼마나 맛이 좋을까. 손쉽게 숯불 요리인 브라이를 즐기는 여유, 이 느긋한 나라의 시스템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바닷가를 돌아다니다가 직접 고른 참치의 뱃살을 회로 떠왔다는 얘기는 많은 미식가들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 한다.

야생의 사자와 코뿔소처럼 공격성이 강한 동물들을 만나 보는 크루거 여행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지프를 타고 밀림을 돌아다니는 동안 만난 사자 무리와 코뿔소들은 저자의 마음을 긴장시켰다. 차에 대해서는 무심한 야생 동물들이 사람의 인기척에는 바로 반응한다는 사실도 놀랍다.

차에 엉덩이를 붙이고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있으면 야생의 동물들은 모두 제 할 일에 열중한다. 하지만 사람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 많은 이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이처럼 숨 막히는 여행은 아프리카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지구의 많은 곳들이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아름다운 케이프타운의 사진들과 함께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마음을 울린다.

"결코 당신은 인생을
바쁘게 흘려 보내지 않을 거라고
쉼에 관해 생각하고
나눔에 관해 생각하고
자기의 먼 곳에 관해 생각하며
멋지게 살아갈게 틀림없다고"


저자의 믿음처럼 그렇게 사는 것을 꿈꾸어 본다. 보다 자유롭고 나눌 줄 알며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멋진 삶을 말이다. 케이프타운이 저자에게 알려준 이 작은 속삭임은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메시지를 마음에 담고 있는 한 이곳의 일상도 그곳의 여유로 물들어 있지 않을까.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장태호 지음, 종이심장(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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