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씻어 말린 매실씨
씻어 말린 매실씨 ⓒ 정명희
두통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매실씨를 손으로 휘저으며 만졌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냄새를 맡아 보아도 특유의 매실향이 향긋했다. 때문에 '매실로 베개를 만들어도 쓸만하겠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위와 같은 기억이 있기에 매실을 건질 때가 되자 나도 베개를 한번 만들어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0kg짜리 통 여섯 개를 비우고 매실 농축액과 매실을 분리하는 일이 어쩐 일인지 담글 때와는 달리 하기가 싫어졌다.

해서, 원래는 통상 농축액을 석 달만에 건져야 되는데 그 배가 되는 여섯 달쯤 후에 건졌는가 하면 따로 모아둔 매실알맹이를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기까지는 또 반년도 더 흘러서 이즈음 끝장을 보게 되었다.

매실 베개 만드는 법

매실 농축액을 만들고 난 매실은 설탕과의 삼투압 작용으로 씨와 육질이 대개 쫀득하게 붙어 있게 마련이어서 그대로 껍질을 벗기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단 커다란 솥에다 매실을 넣고 푸욱 한번 끓여준다.

푹 끓여서 육질이 물러지면 매실을 소쿠리에다 담고서 껍질이 완연히 벗겨질 때까지 치대면 된다. 그러면 대강의 겉껍질은 벗겨지는데 매실씨의 표피에 붙은 것까지 깔끔하게 벗겨지지는 않았다. 때문에 씨에 붙어 있는 육질들이 완전히 떨어지고 매실씨의 모공(?)들이 촘촘히 보일 때까지 씻으려면,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씻고 불리고 하다보니 한 일주일 걸렸다.

즉 매실 씨를 물 속에다 불려놓고 불었다 싶으면 한 차례 치대서 여러 번 헹군 다음 또 물에 담가 둔다. 다음날 또 한 차례 치대서 씻은 다음 물에 불려두는데, 이러기를 여러 날 해야 미세한 찌꺼기들이 완전히 빠져나왔다.

매실씨의 모공이 훤히 보이게 깨끗이 씻겨졌으면 소쿠리에 받혀서 물기를 뺀다. 그런 다음 햇살에 말리거나 요즘처럼 비가 와서 자연 빛이 곤란하면 실내에서 신문지를 펴고 여러 날 바짝 말린다. 그 다음은 매실 씨를 베개 속 잇에 넣고 자크를 올리고, 마무리 작업으로 베개 겉 잇으로 베개 속 잇을 두른 다음 바느질 해주면 끝.

완성한 매실 베개
완성한 매실 베개 ⓒ 정명희
이때 베갯잇으로는 누비가 되어 있는 좀 두꺼운 것이 좋은 것 같다. 매실씨의 뾰족한 부분이 날카로우므로 부드러운 천의 베갯잇은 다소 아플 수도 있기에. 내 경우는 결혼할 때 마련한 '청실홍실' 베개의 속을 비우고 매실을 넣었더니 맞춘 듯이 꼭 맞았다.

매실 베개를 사용해 보니 우선 밀리지 않는 것이 장점이었다. 인공 솜이 든 베개는 날씨가 더울 경우 땀도 찰 뿐더러 자다보면 베개가 자꾸 머리에서 빠져 나가기도 하는데 매실베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리고 대나무 베개의 경우 네모난 것이든 둥근 막대형이든 형태가 고정되었기에 시원할지언정 딱딱하고 불편하지만 매실 베개는 '인체 공학적'이라고나 할까. 작은 알맹이들의 조합이라 베개를 베고 누우면 뒷덜미가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리고 모로 누워서 느껴보면 매실 향이 나기도 하였다.

아무튼 매실 농축액이든 매실주든 담고 난 다음 매실 건더기를 버려야 될 경우 마지막으로 매실베개를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