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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지민이
ⓒ 전진한
하늘에 구멍이라도 생긴 듯 비가 쏟아져 내리는 날이 너무 많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복구돼 이재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난 황금연휴(7월 14일~17일) 중 이틀을 이제 세 살인 아들 지민이와 둘이서 보냈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대구에서 외할머니와 2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지민이와 우리 부부가 같이 산 것은 석 달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부탁할 것이 있다며 저를 불렀습니다.
"여보, 부탁할 게 있는데 말해도 돼?"
"어, 말해봐. 들어줄게."
"음,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회사 엠티 있거든. 지민이 좀 봐 줘."
"헉. (고민하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알았어."

난생 처음 지민이와 둘이서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도 4일 동안이나. 지민이와 단 둘이서 4일을 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단 대구에 있는 장모님께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장모님, 오랜만에 지민이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어, 그래, 지민이 보고 싶은데 잘 됐다. 데리고 와."

일단 안심입니다. 며칠은 장모님 댁에서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합니다. 아내가 떠난 첫날은 지민이와 둘이서 보내야 합니다. 게다가 지민이를 데리고 기차를 타야 한다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첫날 저녁부터 배달시키고... 저는 불량아빠입니다

드디어 아내가 집을 떠났습니다. 저는 일을 일찍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지민이가 반갑게 달려와 안겼습니다.

일단 저녁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됐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어른들이 먹을 수 있는 찌개류(김치찌개, 된장찌개)밖에 없었습니다. 대책이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지민이 반찬이 많이 있어서 저와 단 둘이 있어도 걱정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바빴는지 별다른 반찬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켰습니다.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줘야 하는데 첫 식사부터 중국집에서 시켜주니 저는 불량아빠가 확실합니다. 유난히 입맛이 까다로운 지민이 때문에 평소에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이날 지민이는 다행히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밥을 먹은 후 밤이 깊어가니 지민이는 엄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와서는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야단이었습니다.

엠티가 재밌는지 아내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지민이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매일 만나던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한 것이죠. 대책을 고민하다가 평소 좋아하던 목욕을 시켜줬습니다.

다행히 욕조 안에서 금방 잘 놀았습니다. 목욕을 끝내자마자 우유를 먹인 후 본격적으로 잠을 재웠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지민이는 쉽게 잠들지 않았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엄마를 찾았습니다. 등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지민이를 업으면서 필사적으로 재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기를 한 시간, 지민이가 드디어 자기 시작했습니다. 지민이를 침대에 고이 누이고 거실에 나오니,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습니다.

장난감, 기저귀, 책 등이 뒤섞여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을 하고 나니 밤 12시가 다 됐습니다. 평소 내가 늦게 들어온 날이면 항상 이렇게 혼자 모든 걸 해야 했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습니다. 아내의 빈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 순간입니다. 모든 걸 끝내고 나니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전날 늦게 잠든 터라 피곤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지민이가 깼습니다. 배고프다고 야단이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겨우 지민이에게 빵과 우유를 챙겨줬습니다.

이날은 장모님 댁에 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후다닥 씻기고 옷을 입히고 짐을 쌌습니다. 지민이 짐을 쌀 때 어떤 것들을 챙겨야 할지 잘 몰라 계속 허둥댔습니다. 겨우 기저귀, 손수건, 음료수, 옷가지 등을 챙겨서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지민이는 다행히 지하철 안에서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승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는데 그날따라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요. 아들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뒤에는 배낭을 메고 앞에는 아들을 안고 다녔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푹 젖었습니다.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사람들이 안쓰러워 저를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밥을 먹으러 들어갔습니다. 메뉴를 고민하다가 결국 해물덮밥을 선택했습니다. 지민이가 전날 볶음밥을 잘 먹었던 일이 떠올라 밥 종류 중 맵지 않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지민이는 한 입 먹더니만 더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온 식당을 뛰어다녔습니다. 겨우 붙잡아서 밥을 입 안에 넣으려 해도 지민이는 두 손으로 입을 꼭 가리고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음성이 높아지며) 왜 밥 안 먹어? 빨리 먹고 외할머니 집에 가야지."
"(울음을 터트리며) 아~앙."

지민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람들이 또 힐끗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애는 울고, 등에서 땀은 줄줄 흐르고. 차 시간은 다 되어가고….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지민이에게 밥을 더 먹이지 못하고 겨우 달래서 기차에 탔습니다. 배고픔에 지쳤는지 지민이는 기차에서 계속 잠들어 있었습니다. 안쓰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저렇게 밥을 잘 먹는데 왜 내가 주면 먹지 않을까

▲ 아내와 지민이
ⓒ 전진한
대구에 도착하니 처남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어, 처남. 장모님은 댁에 계셔?"
"아뇨, 볼일 있으셔서 3시간 있다가 들어오신다던데요."
"집에 밥은 있어? 지민이 밥을 안 먹였는데."
"없는데. 사 먹죠."

점심도 안 먹은 터라 저녁까지 기다릴 순 없었습니다. 또 식당에 가야 했습니다. 처남에게 밥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또 한참을 고민하다 평소 지민이가 좋아하는 삼계탕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평소 엄마랑 있을 때는 그렇게 잘 먹던 삼계탕을 먹지 않았습니다. 지민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다른 테이블로 계속 뛰어갔습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겨우 참고 다시 한 번 달랬습니다.

"지민아, 요거 먹어야지 할머니 볼 수 있어."

지민이가 드디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억지로 열어줬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반 그릇을 먹였습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장모님 댁에 도착하니 장모님이 반가운 마음에 지민이를 안아주셨습니다. 지민이도 반가운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 뒤 지민이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장모님이 해주신 반찬과 밥을 아주 잘 먹었습니다. 저러다 체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저렇게 잘 먹는 밥을 왜 제가 주면 먹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모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4일을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민이는 엄마와 만났다는 반가움에 소리까지 지르며 좋아합니다. 연휴 동안 장모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더 많은 문제들이 생겼겠지요.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지민이에게 무관심했는지 알게 되었고 육아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맡겼던 게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이번 경험을 되살려 지민이가 먹을 수 있는 요리도 만들어보고 같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초보아빠 때문에 힘들었을 지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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