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고 소문난 대전 한밭레츠의 초기는 어땠을까요?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지역 화폐가 잘 거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워낙 생소한 시스템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돈거래와는 전혀 다른 철학과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초창기 상황에 대해 김성훈씨는 이런 진단을 내렸습니다.
"왜 잘 안될까를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책에서는 거래자들 서로가 윈윈하는 게임이라는데 왜 안 될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내부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이전의 관계도 없는데 거래라는 게 형성될 리 없었던 거죠. 물론 자료집으로 누구는 무엇을 나눠줄 수 있고, 누구는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긴 했지만 낯선 사람에게 전화하고 협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실 쉽지는 않았던 거죠. 거래가 익숙한 시스템도 아니고요.
이런 원인 진단 후 한밭레츠는 일단 참여자들끼리 서로 관계를 터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품앗이 만찬이라는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촌에서처럼 잔치는 못하지만 특정 날짜에 본인이 먹을거리를 들고와서 -물론 본인의 양보다 2~3인분을 더 준비하게 합니다- 만찬을 하는것이었습니다. 만찬의 자리에서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고 가장 중요하게는 실제 품앗이 거래를 시연해보는 행사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참여자들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하면서 거래가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밭레츠의 회원수는 600명쯤 되고, 2005년도 기준으로 거래건수는 5000건쯤 된다고 합니다.
모든 회원들은 처음 가입할 때 0두루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두루가 없어도 거래를 할 수 있으니 물론 마이너스 계정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도 많습니다. 대전 한밭에 오기 전에 만난 여성단체 활동가 두 분도 상당한 마이너스 계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플러스가 되기 때문에 나눔과 공유라는 지역화폐의 철학에서 봤을 때는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마이너스 계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봉사활동을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주거나, 물품거래를 통해 채워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끼리 관계가 풍부한 공동체에서는 오히려 이런 시스템 없이도 품앗이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연속성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우리가 하는 것은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지역적이지 않으면 물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에너지 낭비와 같은 것이 생기게 되거든요. 또한 지역자립의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거죠. 전국을 모델로 한 실험도 있었는데 모두 실패했어요. 그 원인은 매우 단순한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래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는 공동체와 개인들 간 관계의 문제이지 상품과 노동의 질 문제가 아니거든요. 지역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버려서는 안 되겠죠."
한밭레츠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 의료인들이 몇 명 있었다고 합니다. 관계가 터지고,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고민들은 자연스럽게 민들레 의료생협의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민들레의료생협에는 민들레 의원과 민들레 한의원이 함께 양·한방 협진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민들레치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지역 내에서의 사람들의 소통과 관계의 증진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실험들을 하게하고 지역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희망버스팀 조아신씨가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