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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의상으로의 '외출'로 화제가 된 패션디자이너 홍미화
뮤지컬 의상으로의 '외출'로 화제가 된 패션디자이너 홍미화 ⓒ 강상헌
90년대 이신우씨(전 오리지날리 대표), 진태옥씨(진태옥 대표)와 함께 패션디자이너로는 드물게 학생 등 젊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던 홍미화씨(미화 홍 대표)가 무대의상으로의 ‘외출’을 시도했다.

김진 원작의 같은 이름 만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역사물 판타지 뮤지컬 ‘바람의 나라’(연출 이지나·7월 14∼21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고구려 재발견 붐과 함께 홍미화의 의상 활용으로 스타급 디자이너의 ‘무대의상’에 대한 관심까지를 함께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고구려의 시조(始祖) 주몽의 손자 무휼의 사랑과 무용담을 담은 이 뮤지컬 무대 의상으로의 ‘홍미화의 외출’은 신선했다. 그 옷을 입은 배우들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껏 못 보던 역사극 의상으로 주목할 필요를 느꼈다. 홍미화는 여태 파리 뉴욕 동경 서울 등지에서의 패션쇼 말고는 ‘무대용 의상’을 처음 지었다.

“TV 영화 연극 등의 사극에 등장하는 의상이 너무 천편일률적이어서 평소 이 부문에 생각이 많았지요. 무엇보다도 옷이 아름답지 않아요. 자연스럽지도 않고요. 너무 무게를 잡는다고나 할까, 고증(考證)을 너무 의식하는지 옷 짓는 이의 자유로운 혼(魂)이 보이지 않아요.”

‘오리엔탈 로맨티시즘’을 표방하는 홍미화 네 옷가게 ‘미화 홍’의 옷 짓는 풍(風)을 그대로 이번 작업에 적용했다. 사람 따라 옷 간다더니 그의 나이 시나브로 들어가면서 농익은 기운이 옷에 스며 ‘오리엔탈 에로티시즘’ 쯤으로 진화하는 듯, 막히는 데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 물씬한 배우들의 옷들이 상쾌했다. 그의 말마따나 “옷이 몸에 감겨야지, 몸이 옷을 따르면 아니 된다”는 상식이 통하는 무대 의상들이었다.

관능미 돋보인 남녀 '고구려 옷'이 극의 재미를 더했다.
관능미 돋보인 남녀 '고구려 옷'이 극의 재미를 더했다. ⓒ 서울예술단

오래 전 그가 파리에서 그 곳의 한 언론과 인터뷰할 때 한국의 배내옷을 언급했던 사실을 필자는 기억한다. 배내옷은 아기가 태어나면 맨 먼저 입히는 옷이다. 깃도 섶도 없이, 자연의 섬유 그대로를 써서 자궁 속에 있는 것만큼이나 편안한 옷을 지향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잊었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그 후 줄곧 그의 의상을 볼 적마다 ‘배내옷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지켜본다.

바이어에게 보여주거나 매장에 걸어두기 위한 옷이 아닌 ‘작가’의 마음으로 지은 홍미화의 옷은 주목할 만 했다. 우리 전통에 저런 태깔의 저고리 치마가 어디 있었던가 싶게 ‘창의적’이기는 했지만, 우리 정서와 등지는 상상력의 산물은 아니었다.

딴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여인이 걸어 나온 듯한 옷도 볼 수 있었다. 또 혼령이 입어 허공에서 나부끼던 극중의 옷조차도 우리 전통 옷본에 의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역시 우리의 배내옷을 느끼게 했다.

“멋있다,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들도록 했지요. 편안함과 함께 그것이 옷의 본질 아닌가요? 관객이 뮤지컬에서 옷으로 인해서도 즐겁도록 만들었지요. 우선 옷을 지은 제가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홍미화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

고구려 무사의 옷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구려 무사의 옷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서울예술단
“실은 우리가 한복, 또는 우리 옷을 너무 초라하게 (고쳐)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옷 기모노를 얼마나 아끼고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지를 본다면 우리가 우리 옷을 점점 ‘싸구려’로 초라하게 변신시켜 온 것이 여실히 대비되지요.”

그는 가령 개량한복이니 생활한복이니 하는 낱말부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량해야 할 대상, 또는 생활과 괴리(乖離)된 옷이라는 뜻이 배어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그 형태나 색깔이 ‘우리의 것’이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패션부문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필자는 이런 얘기를 다른 전문가들로부터도 여러 번 들었던 터다. 이를테면 많이 알려진 패션디자이너 배용씨나 이신우씨 같은 이들 말이다. 또 전통, 정통한복의 경우도 격식이나 품위의 측면에서 우리의 한복이 제 위상을 유지하며 발전해 오고 있느냐는 의문 또는 걱정이겠다.

홍미화는 전통에 순응하지 않고 반기를 드는 타입에 속한다. ‘자기만의 옷’을 고집하는 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간혹은 “나는 참 천재야!”하며 주위를 당황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 일하는 이 치고 그런 자기도취 없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게 된다.

그런 그가 만든 ‘고구려의 옷’이 이번 ‘바람의 나라’의 옷인 것이다. “품평 좀 해줘요”하며 들려준 홍미화의 얘기에 따르면 그는 이번 ‘외출’에 매우 기운을 많이 쏟아 부었다. 경기도 양평 한 강변의 그의 본사 겸 스튜디오에서 두어 달은 그의 회사 ‘미화 홍’의 스탭들과 함께 밤샘하여 만들어낸 옷이기에 애착은 무척 크겠다.

"고분벽화의 의상과 원작 만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새로운 옷을 그려냈지요. 고증(考證)이 부족한 점을 상상력으로 메워야 하는 일이었지요. 자료만을 따라가면 실패하지요. 성공했냐고요? 글쎄요.”

보는 이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여러 인사들에게 ‘보고 얘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감의 다른 표현인 것 같았다.

무사 주인공의 외양에서는 당당한 기상이 풍겼다.
무사 주인공의 외양에서는 당당한 기상이 풍겼다. ⓒ 서울예술단
한복과는 다른 ‘우리 옷’의 한 모양이겠다. 같이 가서 봤던 한 사람의 언급은 “옷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였다”는 것이었다. 비교의 대상이 없으니 홍미화의 ‘고구려 옷’을 쉽게 ‘평가’하기 어렵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고분벽화의 고구려인들이 우리 시간 속으로 튀어나온다면 저런 옷을 입고 저렇게 움직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를 들려준 이도 있었다.

전투 의상의 당당함이나 여성의류의 에로틱함은 시대를 넘어 객석에 감흥을 주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았다. ‘옷을 봐 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고 공연을 본 필자 같은 이가 아닌 관객들은 아마 ‘매우 아방가르드한 의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고(古)의상을 보며 첨단적인, 또 시대를 앞선 의상이라 여길 수도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관객들은 별 생각 없이 주인공들에 몰입(沒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특이한 ‘홍미화의 의상’이 뮤지컬의 극(劇)적 요소나 노래 등의 전체 상황과 갈등을 빚은 것 같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덧붙이는 글 | '생명시대신문'(www.lifereport.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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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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