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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항생제 중독>
항생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항생제 중독> ⓒ 시금치
슈퍼에서 일상적으로 사는 각종 육류, 양식어류, 그리고 농작물 등이 항생제 덩어리라는 사실을 알면 어떨까? 그깟 항생제 정도야 라고 무시하면 그만일까? 그러나 이 사실을 간과한 당신은 질병에 걸려 병원에 가도 치료조차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항생제에 중독된 당신의 몸에 더 이상 항생제가 듣지 않기 때문이다.

<항생제 중독>은 일본의 소비자 NGO인 '식품과 생활의 안전기금'이 식품 안전에 대한 독자적인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물이다. 이 책은 세균에 대항하기 위한 항생제의 개발이 이제 한계점에 이르렀으며 그 비밀은 내성균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항생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아남는 균을 내성균이라 부른다. 항생제가 투여되어 많은 균이 사라지면 살아남은 균이 먹이를 독점, 급속히 늘어나 더 이상 항생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항생제 사용이 급증할수록 내성균은 더욱 진화하며 질병치료는 더욱 어려워진다.

1997년에서 99년 사이 미국 미네소타와 노스다코타 주에서 치료를 받은 네 명 환자들의 몸 안에서 MRSA(메타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가 검출되었다. 기존의 MRSA는 병원 안에서나 감염될 수 있는 대표적인 내성균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들에게서 발견된 것은 종래의 MRSA와는 그 성분이 달랐으며 이들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닌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즉 기존의 황색포도상구균이 내성을 획득해 일반 사람들의 생활공간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MRSA에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유일한 특효약으로 남아 있었지만 1980년대 후반 이마저 거부하는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이라는 신종이 출현하게 된다. 문제는 VRE가 계속 늘어나 MRSA와 접촉하면서 역사상 최강 슈퍼박테리아인 슈퍼 MRSA(VRSA,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VRSA의 출현을 인류의 의학이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인 19세기로 후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항생제는 병원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모든 농축산물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가축에게 쓰이는 항생제의 쓰임새는 치료용보다 빨리 살찌우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료에 첨가되는 양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가축의 사료에 항생제를 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효율성을 추구하는 근대 축산에 그 비밀이 있다. 대부분의 축산농가에서는 소를 빨리 키우기 위해 풀이 아닌 곡물 사료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소화기관의 리듬이 깨지고 심한 경우 소가 죽게 된다. 따라서 항생제는 필수불가결한 일용품이 되었다. 하지만 96년 일본은 강타한 O-157 식중독 사건은 소에게 풀을 먹이지 않고 항생제나 합성항균제를 섞은 곡물 사료를 주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젖소가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무자비한 근대 낙농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유를 대량생산하면서 젖소들은 유방암에 쉽게 걸리게 되었고 따라서 항생제 사용을 불가피하게 했다.

보통 돼지들은 2~3평의 공간에서 12마리가 사육된다. 좁은 공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돼지들은 서로의 꼬리를 갉아먹기도 하고 분뇨로 인한 악취 등 열악한 환경은 폐렴에 자주 걸리게 한다.

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식용 양계 산업에서 닭들은 어두운 사육장안에 뒤엉킨 초 과밀 상태로 살만 찌우는 방식으로 키워진다. 만원 버스 같은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돼지와 닭의 사육장에서 항생제는 일상적으로 남용되고 있다.

사실 항생제의 사료 첨가는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경험과 불확실한 추측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했다. 병원에서 다수의 사망자를 낸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인 VRE는 1974년 아보파신이라는 항생제를 닭과 돼지에게 사용하면서부터 발생했고 80년 이후에는 사람에게까지 검출되기 시작했다. 근대적인 공장식 축산환경이 인간에게 죽음의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1986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는 EU국가들이 사료의 항생제 첨가를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의사들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요주의 의약품과 항생제들도 약품 도매상들을 통해 누구든지 살 수 있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파는 포장육에서 슈퍼 살모넬라균이 검출되면서 수만 마리의 돼지를 내성균으로 도살할 수밖에 없었던 덴마크의 경우 항생제를 '사회적인 약물'로 규정한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땅과 강 등 생태계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 의해서였다.

OECD 국가 중 축수산 분야 항생제 내성률 최고수준인 대한민국. 가벼운 질병에 걸렸다고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약 한번 못쓰고 죽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채식물결>에 송고했습니다.


항생제 중독 - 내 아이의 안전한 밥상을 위한 긴급진단

고와카 준이치 외 지음, 생협전국연합회 옮김, 시금치(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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