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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여자들’ 전에서는 열녀원씨탄생기, 음사열전, 심청의 일기, 세여자 이야기 등 가부장제로 인해 사라진 여자들을 다양하게 기록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김화용 씨의 ‘낭랑 관순 오딧세이’란 작품.
‘사라지는 여자들’ 전에서는 열녀원씨탄생기, 음사열전, 심청의 일기, 세여자 이야기 등 가부장제로 인해 사라진 여자들을 다양하게 기록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김화용 씨의 ‘낭랑 관순 오딧세이’란 작품. ⓒ 우먼타임스
조선 숙종 28년(1702년) 경상도 선산부 상형곡에서 향랑이라는 한 여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향랑은 17세에 같은 마을에 사는 칠봉이란 남자와 결혼했으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하고 자결했다. 당시 향랑은 이혼 후 개가를 거부하고 자결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에 의해 열녀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향랑이 자결한 이유는 남편에 대한 절개 때문이 아니었다. 홀로 살아가려는 자신의 의지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마지막 항거로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여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홍살문에 목을 매 사라지든, 정신병동에서 숨죽이며 사라지든, 실종 또는 살인사건으로 사라지든. 유사 이래로 여자들의 사라짐은 계속되고 있다. 무명씨로 살았던 여자들. 그 존재는 끊임없이 익명화된다. 여자들의 사라짐은 현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여성사전시관은 오는 10월 3일까지 ‘사라지는 여자들, 음사열전’이라는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7월 27일에는 부대 행사로 ‘열녀 원씨 탄생기’라는 퍼포먼스와 작은 파티도 연다.

여성사전시관 입구 쪽에서 열리고 있는 ‘사라지는 여자들’전은 페인트 드로잉, DVD 영상, 텍스트 동영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라지는 여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효와 희생의 상징인 심청, 가족 안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어머니, 미군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 등 제도와 관습 때문에 차별받았던 독신녀, 과부, 열녀, 첩 등이 작품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온갖 규율과 통제에 순응하기보다는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여성들의 삶을 ‘음사(淫祀)’에 비유해 여성의 역사를 접해보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하는 음사는 여성들의 문밖출입과 바깥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의 음사를 금지했다. ‘음사 금지’를 통해 역사 속의 가부장제로 인해 사라진 여성의 몸, 언어를 기록하자는 것이다.

사라지는 여자들을 위한 기록은 지난해 8월 페미니즘 아티스트 그룹 ‘입김’이 사라진 여자들을 위한 추모 웹사이트(www.s arajinwomen.org)를 열면서 시작됐다. 이어 올해 4월부터 5월까지는 남편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아내를 뜻하는 열녀 다시 읽기, 자유부인의 성 정치학 들여다보기, 기생·첩 등 조선후기 주변화된 여성들 고찰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기획 세미나도 열렸다.

여성사전시관과 공동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여성문화예술기획과 입김은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삶을 여성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사라진 여성성을 복원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축적하는 것”이라고 전시 의의를 밝혔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더이상 여자들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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