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토는 크고 작은 산맥들이 형제처럼 서로를 보듬고 형성되어 있다. 나는 올 새해 첫 날 한해를 계획하면서 백두대간의 허리이자 우리 민족의 영산인 태백에 기꺼이 오르리라 굳게 결심했었다.
이러한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얻어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난 7월 24일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강원도에 가까이 이르자 지난 번 폭우로 인해 온 산하가 심하게 앓고 있는 모습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설레던 가슴이 무거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태백산 발아래 민박촌에서 짐을 풀고 일찍 잠을 청했으나 마음이 설레기도하고 한편 무겁기도 하여 잠을 설쳤다. 이튿날 새벽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나는 태백산으로 향했다. 시원스런 물줄기가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등산로 곳곳마다 폭우의 상흔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태백을 오르는 산길은 사람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밀쳐내는 그런 험준한 산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산이었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이내 참(站)을 만들어 숨을 골라준다. 그러므로 오르고자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길을 열어주는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기대고 싶은 그런 산이라는 느낌이 스며든다.
태백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왔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초입의 단군사당과 산 정상에 자리 잡은 천제단이 그 것이다. 나는 그리 힘들다는 느낌이 채 들기도 전에 우리 민족의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태백산 표석을 앞에 두고 어떤 기운에 일순 압도당한 나머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힘차고 기백이 넘치는 태백산 표석에 몰입된 나머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간신히 천제단으로 옮겼다. 천제단에는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간절히 간구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발보고 있자니 나 또한 숙연해지면서 따라서 두 손을 모았다.
이런 숙연함을 단번에 깨버리는 굉음이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천제단, 아니 태백산 전체를 흔들어댔다. 나는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군 전투기 한대가 천제단 위를 날고 있었고 곧이어 태백산 줄기에 조성해 놓은 포탄 사격장으로 곤두박질치며 포격하는 굉음이 이어졌다.
전투기 한대가 굉음을 내며 목표물을 향하여 폭격하고 사라지자 또 다시 전투기 날아오기를 끝없이 반복되면서 태백산 천제단에는 전투기 행렬과 굉음뿐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숨죽여야만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마음속에 갖고 있던 태백산에 대한 신성한 이미지가 이내 사라져 버렸고, 조금 전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태백의 기개를 다시 느낄 수 없었다.
일제치하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코자 전국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던 사실과 그 말뚝을 제거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런 우리의 행위와 일본의 그런 행위를 번갈아 생각하면서 어느 것이 더 우리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있을까? 나는 잠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문을 품었다.
나는 이 기사를 통하여 국방부 장관께 진언코자 한다. 올 여름 휴가 땐 꼭 우리 민족의 영산 태백에 오르시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천제단에 올라 전투기 폭격 굉음을 온몸으로 맞이하시라.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아니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