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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낮 1시 포항시 형산강 둔치. 50여명의 노동자들이 한창 무대의 위치를 바꾸며 다음날의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27일 낮 1시 포항시 형산강 둔치. 50여명의 노동자들이 한창 무대의 위치를 바꾸며 다음날의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호중

27일 낮 1시 포항시 형산강 둔치. 5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한창 무대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지난밤 내린 비로 진창이 돼버린 둔치 위에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구령에 맞춰 "으샤, 으샤"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방금 집회를 마친 이들은 내일의 또 다른 집회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서자 당장 "뭐냐"는 반응이 살벌하게 터져 나왔다. "어디 기자야? 이거 찍어도 되는 거야?". 건장한 남자들이 다가와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 기자임을 알자 사람들은 "인터뷰 안 한다"며 삽시간에 흩어졌다. 돌아선 등 뒤로 "개XX들"이라는 욕설이 흘러나왔다. 정부와 언론에 대한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의 분노는 그만큼 깊었다. 상처도 컸다.

"TV를 깨버리고 싶었어. 박살내버리고 싶었지. 신문도 찢어버리고 싶었고. 우리가 죽을 죄를 졌나? 남들 다 하는 주5일 근무 해보자는 게 그리 큰 죈가?"

"다 이탈하고 1000명 남았다고? 그렇게 쓰는 의도가 뭐야?"

돌아선 조합원들 중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각각 20년 이상 일했다고 했다. 쉰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두 사람은 이름조차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파업투쟁 동안 언론이 보여준 태도를 비난하기는 거침없었다.

"언론이고 국회의원이고 다 XXX들이야. 어떻게 신문기자라는 놈들이 죄다 있는 놈 편만 들어. 언론에서 뭐? 포스코 점거 농성하는 사람들이 다 이탈하고 1000명 남았다며? 그것도 극렬분자만 남았다고? 내가 그 속에 있었어. 2400명, 2500명 다 있었지. 근데 그렇게 써버리는 의도는 대체 뭐야? 우리 죽이자는거 아니겠냐구."

실제로 그랬다. 13일 밤 포항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뒤 각 언론사는 "불법 파업을 엄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뿐만 아니라 사설, 기고문이 총동원됐다.

"그러니까 니들하고는 더 할말 없는 거야. 우리가 왜 파업했는지, 거기에 대해서 알아? 우리 편 들어달라는 게 아냐. 왜 포스코에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으면서…."

한 사람이 열변을 토하는 동안, 또 다른 사람은 말이 없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이어진 문답은 "더 할말 없다"는 손사래와 함께 끝났다.

"진짜 우발적으로 들어간 거예요. 조합원들이 흥분한 상태에서. 근데 계획적인 범행이라나 뭐라나…. 화염방사기? 그거 라면 끓여 먹으려고 갖고 들어간 가스통일 뿐이에요. 근데 경찰이 우르르 올라오니까 '이거 죽겠구나' 싶더라구. 그런 상황에서 누가 방어를 안하겠어요? 딱 그런 것만 찍어서 내보내는거야."

경찰이 우루루... "이거 죽겠구나 싶더라구"

포항건설 노동자들은 점검 농성은 끝이 났지만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특히 점거 농성 당시 사측 입장만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표시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포항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투쟁승리와 경찰폭력 규탄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에 참석한 한 노동자.
포항건설 노동자들은 점검 농성은 끝이 났지만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특히 점거 농성 당시 사측 입장만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표시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포항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투쟁승리와 경찰폭력 규탄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에 참석한 한 노동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신의 성만 밝힌 김아무개(48)씨는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22년 동안 현장에만 매달렸다는 김씨는 자신들이 포항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무슨 시장경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돈 벌어 죽도시장에 가서 회라도 한 접시 먹어야 경기가 살아나지, 돈 있는 사람들이 거기서 음식 X먹나."

포스코 측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배소와 가압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반발은 컸다. 점거 농성에 따른 일부 기물 파손은 인정하지만 강제 진압을 시도한 경찰의 책임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조합원들이 점거한 곳 중 본사 건물 5층은 경찰과의 공방으로 피해가 컸다. 나머지 점거장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는 게 조합원들의 얘기다.

"점거한 뒤 4~5일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죠. 하지만 경찰이 투입됨에 따라 그들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물이 파손된 측면이 있어요. 불가항력적인 이런 상황을 언론에서는 단순히 결과로만 보도하고…. 이런 행태가 열 받죠."

비교적 젊은 측에 속하는 조합원 이종철(35)씨는 "언론이 왜 사측입장에서만 보도하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지난 21일, 노조가 포스코 점거 농성을 자발적으로 푼 뒤 처해진 사회적 형벌은 가혹했다. 지도부 58명 전원 구속, 18명 추가 출두요구서 발부, 검찰의 추가 구속수사 발표, 포스코의 수십억원 손배소 준비….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국민들의 손가락질이다. 언론과 청와대, 경영자와 경찰이 번갈아가며 여론몰이를 한 탓에 조합원들의 고립감은 커졌다.

그렇다고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게 조합원들의 입장이다. 노조 활동을 1년밖에 하지 않았다는 이승열(37)씨는 "우리 투쟁은 언론이 말하듯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이 하는 투쟁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에서 일한 지 1년밖에 안 됐어요. 그 전에는 장사를 했는데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내가 노동자가 되고 보니 왜 이들이 이렇게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가슴 절절히 알게 됐죠."

"빨리 일터로 가는게 소원인데..."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 이들의 소원은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사진은 지난 19일 오후 포스코 본사 건물 유리창에 붙어 있는 구호.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 이들의 소원은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사진은 지난 19일 오후 포스코 본사 건물 유리창에 붙어 있는 구호. ⓒ 오마이뉴스 권우성
또 다른 조합원인 김재형(42)씨도 "포스코 점거 당시 안에 있던 동료들의 가족을 바깥에서 지켜보던 심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투쟁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게 됐다고 전했다.

포항건설노조는 점거 농성 이후 3일 만에 임시지도부를 구성해 사측과 재교섭에 나섰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파업을 풀고 복귀한 것은 아니다. 국민적 불신이라는 큰 상처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원은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인데, 이번 달은 일을 하지 못해 생활비가 없어요. 사태가 빨리 해결돼 일하러 가는 게 제 소원이죠."

조합원 이종철씨는 언론에 대한 분노를 토한 것과는 또 다르게 희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교섭이 끝나지 않는 한, 이씨는 앞으로도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형산강 둔치 집회에 참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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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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