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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 출판사
자본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파헤치는 또 다른 책은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다. 앞서 소개한 손철성의 <자본론>이 맑스의 논의를 충실하게 풀이한다면, 그와 달리 이진경의 것은 '자본의 외부'를 탐험하는 '문제적'인 책이다.

이진경은 '코뮨주의'라는 개념으로 자본론의 재구성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맑스의 고유한 문제설정을 통해서 맑스의 저작을 읽는 것"과 "거기(맑스의 저서)에 섞인 헤겔이나 스미스, 리카도의 그림자를 지우며 읽는 것"(32쪽)을 우선적인 전략으로 삼고 있다.

예컨대, 노동에 대한 맑스의 생각에서 이진경은 헤겔철학의 그림자를 지우려든다. 알다시피 맑스의 노동관은 헤겔철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는 헤겔의 관념적인 견해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노동이란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이며, 그렇게 사용함으로서 판매자는 비로소 노동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노동이란 그러한 사회적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정의되는 것이지, 합목적적 활동이자 '정신의 외화 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합목적적 활동'이라는 정의는 헤겔식의 지극히 관념론적 개념이지, 결코 맑스가 말하는 '유물론적' 개념이 아니다… 노동이란 '도구를 사용하는 활동'이나 '의식적이고 합목적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가치화된 활동'이다."(139쪽)

이렇게 헤겔의 그림자를 걷어내면, 노동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또한 노동의 가치와 의미도 전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그가 이렇게 재구성을 시도하는 개념은 노동만이 아니다. 그는 그간 우리가 꿈꾸어 왔던 이상적인 정치경제학의 전체적인 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흥미로운 도전장을 내민다.

"노동은 문제가 없는데, 잉여노동이 문제라는 생각, 가치법칙은 문제가 없는데 잉여가치법칙이 문제라는 생각, 그래서 노동해방이란 잉여노동 없는 노동을 뜻한다는 생각, 잉여가치법칙 없는 가치법칙을 통해서 공산주의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 이 모든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149쪽)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새로운 표현으로 구사된 자본론

이진경의 책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말빨'이 참 화려하다. 그가 내민 도전장이 몰고 올 논쟁을 기대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되겠으나, 그의 유창한 언변을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화려한 언변 구경도 좀 해보자. 그는 화폐에 대해 "화폐와의 교환가능성은 어떤 생산물이 상품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80쪽)이라고 설명한다. 핵심을 찌르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다. 또 맑스가 분석한 화폐의 물신적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월적 가치로서 화폐는 '화폐화의 강박증'을 만들어낸다. 이제 모든 생산물들은 상품세계의 피안에 있는 화폐라는 초월적 가치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대체하고 교환하기를 바라고 욕망한다."(85쪽)

맑스가 분석한 화폐의 물신적 성격이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새로운 장식의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난 듯하지 않은가? 확실히 그의 설명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는 <자본론>의 주요 개념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친절하고 '얌전하게' 설명만 하지 않는다. 여기 다루고 있는 화폐에 대한 부분만 해도 그렇다. 그는 조세제도의 검토를 통해 화폐가 시장적인 성격이 아니라 국가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화폐가 단일한 일반적 등가물이라는 초월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것 또한 조세를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화폐가 근대적 통념과 반대로 시장적인 성격을 갖는 게 아니라 국가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폐가 상품세계에 대해서 갖는 초월성 및 권력은 바로 국가가 갖는 초월성 및 권력과 분명한 상응성을 갖는 것이다."(95쪽)

고전 정치경제학의 공리계 전복하여 새로운 사유 촉발해

이진경의 논의는 '정통'을 벗어난다. 그는 <자본론>이 딛고 있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외부'를 향해 뛰쳐나간다. 여기 그가 말하는 '자본의 외부'란 "자본의 논리 내지 정치경제학의 논리로 환원불가능한 어떤 것"(461쪽)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논의는 책 제목처럼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다. 그리고 그 '넘어섬'의 구체적 대상이 되는 것이 고전 정치경제학의 공리계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문제설정을 좀 더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정치경제학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를 이루는 노동가치론 자체를, 노동가치론의 공리계를 비판하고 전복해야 하는 게 아닐까?"(108쪽)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노동가치론의 가장 근본적인 공리를 반박하고 기각해 나간다. 그는 그것이 진정 맑스의 문제설정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그는 "인간만이 노동하고 인간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인간학적 관념"이 "현재 세계에서 점차 지지할 수 없는 허구적 관념"(205쪽)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사유를 모색한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계속 노동가치론의 공리와 반하는 사태들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고전적 공리를 전복하고 난 자리에 진지하게 검토해볼만한 정치경제학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가치에 대해 "가치형태는 양적 관계를 표시하는 수학적 도식이 아니라 질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논리적 도식"(71쪽)이어야 하며, "가치란 어떤 생산적인 활동이 타자에게 유의미한 관계를 형성하는 내재적 장의 이름"(73쪽)이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그는 궁극적으로 이렇게 질문한다.

"자본주의는 가치화될 수 없는 것, 가치화되길 거부하는 모든 것에 대한 최악의 저주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가치화의 메커니즘 속에 사로잡는 자본의 주문을 차단하지 않고서 어찌 자본의 저주를 벗어나 자본주의의 전복을 꿈꿀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야 한다. 자본에 의한 가치화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조건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할까?"(206쪽)


이렇듯 그는 시종일관 맑스의 <자본론>의 가정들을 전복하고 해체하여 '이진경의 자본론'으로 재구성을 시도한다. 이는 많은 독자를 감탄케 하면서 동시에 당혹스럽게 하기 충분해 보인다. 왜냐하면 논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감탄 속의 당혹감'(!)이다.

그는 그간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통념화된 맑시즘을 뒤집는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삶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촉발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전복과 새로운 사유 속에 그가 꿈꾸는 것은 '코뮨주의'다.

말하자면 그건 그가 제시하는 대안인 셈이다. 그는 "지불 없는 가치화를 거부하는 생산자들의 '연합체', 활동가들의 '공동체'를 통해 자본에 대해 집합적으로 지불받는 새로운 관계"(270쪽)를 꿈꾸어 보자고 제안한다.

잠재적 폭발력 큰 흥미로운 지적 도전장 내밀어

손철성의 <자본론>과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은 각기 그들이 속한 풀빛 출판사의 '청소년철학창고' 시리즈와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드러나는 고전을 대하는 상반된 두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나는 고전을 충실하게 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으로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다. 앞서 소개한 손철성이 풀어쓴 책은 맑스의 <자본론>을 핵심적이고도 쉽게 접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이진경의 이 책은 이미 <자본론>을 성실하게 읽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한편 그의 논리가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그 화려한 언변 속에 알맹이가 얼마나 있는지 의심이 가게 된다. 무엇보다 '어떻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진경의 책은 많은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아쉽게도 내게는 이진경의 작업을 평가할만한 능력이 아직 없다. 다만 지금으로선 그의 제안은 성실히 검토해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이진경은 우리에게 흥미롭고도 폭발적 잠재력이 매우 큰 지적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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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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