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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오른쪽이 표윤호, 왼쪽이 박정헌군 입니다.
사진에서 오른쪽이 표윤호, 왼쪽이 박정헌군 입니다. ⓒ 배만호
중부지방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 날에 남쪽은 뜨거운 햇살이 빛났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지요. 거제에서 일을 끝내고 14번 국도(마산시 진동면)를 이용해서 일터로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두 학생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그냥 응원만 하고 지나가려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경적소리로 내며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차의 옆 거울로 보니 모습이 많이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제가 여행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방학이면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처음엔 저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보다 걸어서 다닐 때가 더 여행의 묘미를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어서 갔습니다. 때로는 밤 10시에 걷기도 하였고, 때로는 걷다 지쳐 길가에 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하는 동안에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군대간 아들이 생각난다며 밥을 주시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자신이 젊었을 때에 여행을 하면서 고생했다며 차에 태워 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술을 사 주시는 분도 계셨지요.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말 못하는 고민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짧지만 깊은 우정을 다지며 보낸 시간들이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좋은 기억들이 많이 스치고 자나갔습니다. 그리곤 차를 세웠습니다. 자전거는 한참을 기다려야 올 것입니다. 잠시였지만 기다리는 그 순간에 제 가슴도 뛰고 있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하는 모습만을 봐도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생각은 잠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검게 탄 얼굴을 보니 차마 그렇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학교 운동장에서 잠을 잔다는 말을 듣고는 제가 사는 곳으로 오라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엔 망설이는 것 같더니 고맙다며 와 주었습니다.

지난 금요일(7월 21일)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발안, 유구, 유성, 진안, 구례, 남해, 마산을 거쳐 부산에 있는 친구 집에서 여행을 마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행의 마지막 무렵을 제가 함께 했던 것이지요.

이들의 여행 방식은 저와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노숙을 하고, 걷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가는 지역을 자세하게 둘러보며 여행을 합니다. 그래서 좁은 한 지역을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정도 걸려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국도 위주로 자전거 페달만 열심히 밟고 다녔습니다. 왜 그런 식으로 하냐고 물으니, 처음이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근처를 둘러보며 여행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니 다음에는 그런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며 좋았던 일, 좋은 사람을 만났던 일도 많았지만 좋지 않았던 일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비 내리는 밤에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다가 쫓겨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그 때의 기억이 제일 마음 아프다고 하는 이들에게 좋았던 일들만 오래 기억하라고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행에 지친 두 학생에게 고기를 구워 주었습니다. 저도 그랬듯이 초보 여행자들은 먹는 것에 대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냥 몇 끼 대충 먹고 때우자는 식이지요. 대단한 성찬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고기에 소주를 몇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 여행하는 이유가 뭔가요?
"여행을 하는 동안 현실의 문제와 잠시나마 떨어져 여행 자체만을 생각하기에 다른 모든 걱정들을 잊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취업 걱정과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모든 것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 여행하면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비록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고 아무런 기대 없이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이 좋았습니다."

-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이 있다면?
"일종의 '깡'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에 끝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나 자신에게 일종의 오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져가고 싶습니다."

또한 뜻밖의 호의에 고맙다는 말만을 자꾸 하는 학생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도 제가 받은 것은 돌려주는 것입니다. 여행 다닐 때 좋은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함을 그 사람에게 돌려 줄 수 없기에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지요. 제게 고맙다고 하지 마시고, 나중에 다른 여행자를 만나면 그때에 지금 제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풀어 주세요."

그리고 아침(29일)에 이들은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이들의 뒷모습이 힘차 보입니다. 여름의 햇살도 이들의 뜨거운 열정을 못 막을 것입니다.

다시 출발입니다.
다시 출발입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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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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